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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감? 그런 건 전혀 없는데.”

서울 시내 한 지구대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는 A경위에게 자치경찰제와 관련해 “혹시 기대감 같은 건 없냐”고 물었더니 웃음소리와 함께 이런 답이 돌아왔다. 오랜만에 전화해 안부를 묻다 오는 7월 전면 시행하는 자치경찰제 얘기를 꺼낸 터였다. 한참 불만만 털어놓길래, 좋게 봐줄 만한 건 없나 싶어 질문한 것이었는데 허탈했다.

김승환 사회부 기자

그가 유독 비관적인 사람이라 그랬던 게 아니다. 직간접적으로 아는 현장 경찰 대부분이 자치경찰제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무엇보다 기존 지방자치단체 업무를 떠맡게 될 것이란 우려가 커 보였다. A경위는 “구청에서 하는 주차위반 단속이나 노숙인·정신질환자 보호 업무 같은 걸 이제 다 경찰이 하게 된다니깐” 하고 언성을 높였다.

그저 엄살로 들리지 않았다. 자치경찰제 취지 중 하나가 ‘주민지향적 치안행정 구현’이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치안사무와 자치사무의 결합’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여성·청소년·교통·경비 업무 등이 자치사무와 합해지면 치안서비스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현장 경찰 입장에서는 ‘치안사무에 자치사무가 합해진다’는 말을 ‘일이 늘어난다’고 알아듣는 게 정상이다.

최근 일부 지자체가 입법 예고한 자치경찰 조례안에 대해 경찰이 반발하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그중 가장 시끄러운 곳이 충북도다. 충북도지사가 자치경찰사무 범위를 개정하려 할 때 충북경찰청장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 조례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애초 경찰청이 마련한 표준조례안은 ‘시·도경찰청장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강제 규정이었다. 충북도는 자치권 침해를 이유로 임의 규정으로 수정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충북 경찰이 도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반발했고, 결국 얼마 전 충북도가 강제 규정으로 되돌려놨다. 그러나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후생복지 지원 문제 때문이다. 표준조례안은 지자체 지원 대상을 ‘자치경찰 사무 담당 공무원’으로 명시했는데, 충북도는 조례안에서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 소속 경찰공무원’으로 제한했다. 지구대나 파출소 등에서 일하는 경찰관에 대해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경찰관이 국가직인 만큼 지자체 지원이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충북도 주장은 강원도 사례 앞에서 궁색해진다. 지난 2일 전국 최초로 출범한 강원도자치경찰위원회는 1호 사업으로 ‘지구대·파출소 근무환경 개선’을 선정했다. 도 예산 6억원을 투입해 에어컨·공기청정기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강원도는 “자치경찰제 안착을 위해 주도권 싸움보다 상호 존중과 협력이 더 절실하다”고 밝혔다. 곳곳에서 일던 잡음에 골머리 앓던 경찰청이 박수를 보냈다. 내부 공지로 “늘 제약받아 온 경찰복지 문제에 도움이 될 좋은 사례”라고 칭찬했다.

얼마 전 20대 경찰관이 쓴 에세이집 ‘경찰관 속으로’를 읽다 보니 눈에 띄는 구절이 있었다. “현장의 영웅을 원한다면 영웅이 마음 편히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줘야 해. 맨땅의 헤딩으론 이마만 깨질 뿐이니까.” 강원도는 ‘영웅이 활약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책임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충북도는 아직 그러지 않고 있다. 끝내 그 책임을 미루다 애먼 충북 경찰의 ‘이마’만 깨지는 게 아닐지 걱정된다.

 

김승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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