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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돌무덤뿐이지만… 두 여신 섬겼던 종교의 중심지 [박윤정의 칼리메라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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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25 08:00:00 수정 : 2021-04-25 00: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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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엘레우시스

아테네서 20㎞ 거리
대지의 여신 등 위해
비밀 의식 치르던 곳
‘미스터리’ 어원 낳아

‘저승의 문’ 통하는
플루토니온 동굴도
푸른 지중해 바라보며
수많은 신화에 젖어
살라미스해협. 5세기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그리스의 승리로 이끈 결정적인 해전이 펼쳐졌다.

아테네를 출발하여 펠레폰네소스 반도 여러 도시를 둘러보았다. 차량에서 보내는 시간도 적지 않았지만 많은 유적지를 훑느라 시간을 재촉했다. 지도상으로는 가까운 거리라 여유 있게 여러 곳을 둘러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수많은 유적지와 가벼이 스쳐지나 가거나 건너뛸 수 없는 유적들 때문에 아쉬운 마음으로 시간을 나눠 다니느라 바쁜 걸음걸이였다.

고대 그리스에 도시국가가 많을 때는 본토에만 200개 정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스 본토 면적 약 10만㎢는 남한 면적과 비슷하다고 하니 크지 않은 땅에 수많은 나라들이 모여 있었던 셈이다. 물론 고대 그리스 영토가 지금과 같다고 보기 어렵지만, 대한민국 땅에 200개나 되는 나라들이 모여 있었다니 놀랍다. 가깝지만 다른 문화인 고린도와 미케네, 에피다우루스를 돌아보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제한된 시간만을 허락하고 다시 아테네로 발길을 돌린다. 조금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다음 여정을 위해 버스에 오른다.

아테네에 들어서니 또 다른 설렘이 아쉬움을 옅게 하고 반긴다. 첫날과는 또 다른 느낌의 아테네는 푸근하다. 언덕 위, 불빛에 반사되는 성스러운 파르테논 신전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반겨준다. 과거 아테네 군인들도 출정을 마치고 돌아올 때 이런 편안함을 느꼈을까. 불빛 따라 사그라지는 태양을 보내며 어둠에 하루의 피곤함을 묻는다.

무리한 일정으로 피곤함을 덜기 위해 아테네 시내에 머무르기로 했다. 여유로운 아침식사를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시내로 나서려다 오후 일정을 고민한다. 아테네 근처 흥미로운 비밀장소가 있다는 호텔 직원 얘기가 귓가에 맴돈다. 결국 호기심에 이끌려 온종일의 휴식을 포기하고 근교에 다녀오기로 맘을 바꿨다. 일반적으로 그리스 여행 일정에 없는 곳이라니 궁금증이 더 한다.

엘레우시스. 아테네에서 20km 정도 떨어진 곳, 지중해를 바라보며 고대에 가장 중요한 의식이 진행되었던 곳이다.

가벼운 차림으로 아테네 북서쪽으로 20km 떨어진 도시로 향한다. 고대 그리스 유명한 종교 중심지로 엘레우시스 비의가 이루어진 장소이다. 엘레우시스 비의란 그리스 신화의 두 여신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에 대한 일종의 컬트 종교이다. 종교의 가르침 또는 주기적으로 개최한 신비 제전 또는 비전 전수의식을 가리킨다. 이 의식이 그리스어로는 미스터리하다는 말의 어원인 미스테리아(Mysteria)이다. 기원전 1700년경부터 로마제국시대까지 사후에도 삶이 있다는 믿음으로 주기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엘레프시나(Elefsina)로 불리는 엘레우시스(Eleusis)로 향하기 위해 아테네 시내를 벗어난다. 푸른 지중해를 바라보며 고속도로로 달리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고린도와는 달리 고속도로에서 엘레우시스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더 용이할 듯하다. 파르테논 신전처럼 웅장한 신전이 남아 있다면 멀리서도 알아봤겠지만, 가까이 다가서야 찾을 수 있는 나지막한 기둥들만 먼 나라에서 찾아온 관광객을 반긴다. 굴러다니는 돌틈으로 묻힌 과거 역사를 들쳐본다. 이곳 엘레우시스에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를 위한 신전이 있었다고 한다. 외부와 차단된 채 비밀의식을 치르는 장소로 수천 명을 수용하였다고 하니 거대한 신전이었을 테다. 흩어진 돌무덤으로 규모를 상상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그 터전을 바라보며 신전을 그려본다.

엘레우시스 상부. 엘레우시스 위로는 후대에 세워진 그리스정교회가 있다.

상상으로 이뤄낸 신전 외에도 이곳에는 플루토니온이라는 신화적으로 중요한 동굴이 있다. 유적지 입구에서 무너진 기둥과 얕게 쌓인 돌무더기 사잇길을 따라 나서면 길 끄트머리에 봉긋 솟은 언덕과 움푹 파인 동굴이 나온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동굴이라기보다 파인 홈이지만 그곳이 플루토니온이란다. 옛 그리스인들은 사후, 지하세계로 간다고 믿었고 그곳을 통하는 입구에 저승의 신 하데스를 위한 신전 ‘플루토니온’을 세웠다. 하데스의 다른 이름은 플루톤이다.

언제인가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지옥의 문’이 터키에서 실제로 발견됐다는 외신기사를 접한 적이 있는데, 로마시대 히에라폴리스로 불리던 터키 남서부의 유적지 파묵칼레에서 신화 속 지옥의 문이 확실시되는 동굴을 발견했다는 기사였다. 동굴에서 지옥의 신 하데스(플루토)와 코레(처녀)를 기리는 이오니아식 반기둥과 비문도 함께 찾아냈다고 하니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지금 서 있는 이곳이 지옥의 문일까. 아님, 파묵칼레일까. 알 수 없는 신비함을 가지며 과거의 역사를 상상해본다. 저 푸르른 지중해는 모든 것을 알고 있겠지! 파도에 실려 멀어지는 너울이 무어라 속삭이는 듯하지만 그저 멍하니 언덕 위에 올라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지중해를 바라보며 하루를 보낸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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