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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막내딸 못 지켜줘서 미안해”… 백발 어머니의 오열

입력 : 2021-06-11 06:00:00 수정 : 2021-06-11 07: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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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고교생 희생자 중 가장 어려
비대면 기간 학교 다녀오다 참변

요양원 어머니 병문안 나선 부녀
버스 앞뒤 좌석 앉았다 딸만 숨져

아름드리 가로수가 완충 작용
버스 앞쪽 탄 승객들 목숨 구해
10일 오후 광주 건물 붕괴 참사 희생자들의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광주 동구청 앞에서 한 유가족이 희생자 영정사진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뉴스1

“아빠 버스 탔어요. 집에서 만나. 사랑해.”

철거 건물이 무너지면서 버스에 타고 있던 한 고등학생은 가족에게 전화를 해 “사랑한다“ 말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가족과 영영 이별했다. 열일곱살 어린 학생은 채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어른들의 무책임한 안전불감증 때문에 세상을 등졌다. 부모와 가족들은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하루 종일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참척의 슬픔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지에서 발생한 건물 붕괴 참사로 숨진 버스 승객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속속 전해지면서 가슴을 미어지게 하고 있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장을 보고, 학교를 오갔던 평범한 시민들이었으나,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운명을 달리했기에 유족은 물론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10일 사고 피해 유족들에 따르면 전날 건물에 매몰된 시내버스에 탑승한 A(65·여)씨는 당일 큰아들의 생일을 챙기기 위해 조금 일찍 식당문을 닫고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미역국을 끓여놓고 자신의 일터인 식당으로 나온 그는 아들에게 전화해 “미역국을 꼭 챙겨 먹으라”고 당부했다.

그런데도 직접 아들의 생일을 축하해주지 못한 것이 맘에 걸렸는지 전통시장에 들러 반찬거리를 사들고 버스에 올랐다. 평소 시내버스를 잘 타지 않지만, 장을 보느라 버스에 올랐고 자택까지 두 정거장을 앞두고 건물더미가 덮쳐 참변을 당했다.

10일 오후 광주 동구청 앞에 광주 학동4구역 건물 붕괴 사고 희생자들의 합동 분향소가 차려진 가운데 동구 관계자들이 영정사진을 만들고 있다. 뉴스1

A씨는 고생 끝에 2년 전 법원 앞에 작은 곰탕집을 차렸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손님이 줄어들자 점심시간이 지나면 귀가했다. 사고 당일은 아들의 생일상을 차려주기 위해 좀 더 일찍 점심 장사를 마치고 시장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두 아들은 “홀로 가정을 일구시느라 고생하면서도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며 “철거 당시에 현장을 안전하게 통제했으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눈물을 쏟아냈다.

광주 조선대병원 영안실에 싸늘한 주검으로 안치된 고교생 B(17)군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다 사고를 당했다. 평소 버스 뒷좌석에 앉길 좋아했던 그는 이날 비대면 수업이라 등교할 필요가 없었지만, 음악 동아리 후배들을 챙기고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늦둥이 외아들로 부모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B군은 애교도 많아 사고 20분 전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버스 탑승 사실을 알리고 “사랑해요”라고 전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마지막 전화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9명의 희생자 중 가장 어린 B군은 가장 마지막으로 사고 현장에서 수습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광주지부는 이날 애도 성명을 냈고 광주교사노동조합은 “이런 후진국형 사고는 이제 끝내야 한다. ‘설마’ 하는 의식이 끼어들지 않도록 시공사에 고액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희생자 C(29·여)씨는 부모와 떨어져 살며 최근 국가고시를 마치고 이날 아버지와 함께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던 중 변을 당했다. C씨는 아버지 바로 뒷좌석에 타고 있다 숨졌고 아버지는 크게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딸의 시신을 확인한 백발의 어머니는 “공부만 하던 우리 막내딸 불쌍해서 어쩌나… 못 지켜줘서 미안해”라며 오열했다. 유가족은 “막내딸이 엄마한테 간다며 매우 좋아했는데…”라며 탄식했다.

광주기독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D(53·여)씨는 구청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했다. 동구청 별관에서 일을 마치고 어머니와 시장에서 장을 본 뒤 당일 홀로 버스에 올랐다. 그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짐이 좀 많으니 버스 승강장으로 나와주면 고맙겠네”라고 전했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조문객들은 “언제까지 안전불감증으로 이런 희생을 치러야 하나”라며 안타까워했다.

소방 당국은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철거건물 붕괴 사고 이틀째인 10일 인명 수색을 마무리하고, 혹시 모를 추가 사고 예방을 위한 현장 관리 체제로 전환했다. 연합뉴스

반면 건물붕괴 당시 가로수 덕에 시내버스에 탔던 일부 승객이 목숨을 건진 사연도 알려졌다. 소방당국은 이날 광주 동구 학동 붕괴 사고 현장을 찾은 김부겸 국무총리에 대한 현장 브리핑에서 “콘크리트 잔해물이 시내버스를 덮칠 당시 인도에 심어진 아름드리 나무가 완충 작용을 해 버스 전면부가 후면부에 비해 덜 손상됐다”고 밝혔다. 사고로 숨진 승객들 대부분은 버스 뒤쪽에서 발견됐다.

한 기업체 통근버스는 건물이 도로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승강장을 덮치기 1∼2초 전 시내버스 옆을 지나가 화를 모면한 모습이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에서 확인됐다.

 

광주=김동욱·한승하·한현묵 기자kdw763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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