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기업’ 넘어 ‘착한 기업’ 소망
유튜버는 하나의 잣대로 순위 못 매겨
풍부한 삶의 경험·자기표현 능력 중요
일부 콘텐츠 논란… 과도기 단계 이슈
시청자들 규제로 빠르게 자정작용
전체 사회 안에서 자신의 역할 고민
스타트업에서 기업으로 안착 목표
“우리 사회에 저와 샌드박스가 쓸모 있고 의미 있는 회사가 되길 바랍니다. 공동체 안에서 제게 주어진 역할이 있고 그것을 잘 수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MCN(다중 채널 네트워크) 회사이자 유튜브 크리에이터 400여팀이 소속된 기획사로 유튜버와 그 이용자들 사이에서 ‘핫’한 주목을 받고 있는 샌드박스네트워크 이필성(36) 대표는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샌드박스가 ‘잘나가는 기업’에 머무르지 않고 ‘착한 기업’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소망을 말한다.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샌드박스네트워크 본사에서 그를 만나 2시간가량 인터뷰했다. 글로벌 기업 구글에 다닐 때 유튜브 플랫폼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 창업해 6년 만에 ‘콘텐츠의 힘’ 하나로 국내 대표 디지털 콘텐츠 제작사로 키워낸 젊은 CEO다. 그런 그가 인터뷰에서 회사의 이익에 앞서 기업의 사회적 쓸모를 얘기하는 모습이 건강하고 이채로웠다. 그에게서 크리에이터와 디지털 콘텐츠의 잠재력, 유튜브의 세계, 그의 꿈과 도전 등에 대해 들어봤다. 세상의 변화, 그중에서도 크리에이터와 콘텐츠의 무한한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선 기성의 관성과 고정관념이 최대 방해물임을 그가 알려줬다.
-요즘 잘나가는 회사라 들었다.
“디지털, 모바일 플랫폼을 위해서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하는 회사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크리에이터가 콘텐츠를 확장하거나 수준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콘텐츠 활동을 도와드리고 대신에 그분들의 사업활동에 대한 독점적인 권한을 갖는 것이 기업활동의 기본이다. 크리에이터 한분 한분이 모두 다양한 사업부서를 둘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일종의 사업부서 역할을 한다고 봐주시면 될 것 같다. 미디어 비즈니스의 기본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광고, 미디어를 통한 제품 유통,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한 상품, 교육이나 콘퍼런스 등 다양한 방면에서 수익을 내고 있다. 각 MCN이 주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누가 1등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현재 샌드박스가 독립 MCN 중에 가장 규모가 큰 걸로 안다.”
-소속된 크리에이터 가운데 요즘 누가 가장 ‘핫’한지.
“현재 400여개 팀이 있는데, 아시다시피 피식대학, 김해준 등 개그맨 출신 유튜버들이 요즘 가장 핫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김미경TV, 슈카월드, 풍월량, 한동숙, 도티 등 다양한 방면에서 잘 알려진 유튜버들도 소속돼 있다. 하지만 유튜브 세상에서 누가 가장 잘나가는지에 대한 평가는 전통적인 엔터테인먼트 업계처럼 하나의 기준으로 순위를 매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규모로 유튜버들을 평가하지 않는다. 조회 수나 구독자 수로 채널의 가치를 평가할 수 없으며 실제 크리에이터를 섭외할 때도 각자의 가치, 그 나름의 가치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부가가치, 잠재력, 개성 등이 각자 다르며 비즈니스 모델도 그에 맞게 다른 형태로 구축하고 있다.”
-크리에이터가 되는 데 조건이 있을까.
“크리에이터에 자격조건은 없다고 생각한다. 콘텐츠를 중심으로 팬덤이 생기고 관심 분야가 굉장히 세분화돼버렸기 때문에 어떤 크리에이터가 성공할 거라고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성공한 크리에이터를 보면 풍부한 삶의 경험과 자기표현 능력이 뒷받침돼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만의 스토리와 자신만의 전문성이 있어야 주로 다룰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자기표현능력이 더해지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자기표현능력은 교육환경, 가정환경에 따라 길러질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틱톡 등을 통해 스스로 표현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어린 친구들도 많은 것 같다. 앞으로 어떤 크리에이터들이 새롭게 등장할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지금은 나와 비슷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크리에이터를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욱 창의적인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유튜브 플랫폼이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까.
“유튜브는 대표적인 양면시장이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지속해서 유입되는 것이 성공 조건인데 유튜브는 공급자들이 들어올 동기를 주는 것을 굉장히 잘하고 있다. 공급자들이 내 브랜드 자산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이란 것이 최대 강점이다. 그렇게 볼거리가 많아지니 수요자들도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 구조가 단시간 내에 깨지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 같다. 혹자는 대규모 자본의 유입으로 고퀄리티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플랫폼이 생기면 유튜브를 잠식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다. 수요자는 고퀄리티 콘텐츠만을 원하지 않는다. 콘텐츠에 대한 니즈가 굉장히 파편화돼 있기 때문에 유튜브다운 콘텐츠를 원하는 사람들은 없어지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모두 같은 뉴스, 같은 방송을 봤겠지만, 요즘은 세 사람만 모여도 각자 다른 걸 보고 있다. 서로 즐겨보는 유튜브에 대해 이야기하면 상대방은 전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콘텐츠를 중심으로 팬덤이 형성되고 관심 분야가 굉장히 세분화됐다. 유튜브는 미시적으로 세밀한 콘텐츠를 볼 수 있고 알고리즘을 통해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찾아주는 등 차별화된 형식을 갖췄다.”
-샌드박스가 최근 추진 중인 콘텐츠는.
“오리지널 시리즈를 구상하고 있다. 늘 머릿속에 ‘볼거리가 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샌드박스가 나서서 디지털 이해도가 높은 프로듀서의 제작물을 만들면 어떨까 싶다. 다만 옛날 방송국들이 하던 방식이 아닌 유튜브 감성과 유튜버의 시각으로 만드는 오리지널 예능 같은 것 말이다. 예를 들어 다른 곳에서 만든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이나 가짜사나이, 머니게임 같은 유튜브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중이다.”
-가짜사나이, 머니게임 등은 뒷말도 많았는데.
“제작진이 잘못했다거나 미숙했다기보다는 준비가 많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너무 큰 관심을 받은 것 같다. 거기서 감당이 안 된 거다. 유튜브는 빠르게 자정작용이 일어나는 곳 중 하나다. 가짜사나이나 머니게임 등을 통해 시청자들이 날것을 보고 싶어하지만, 너무 날것은 불편해한다는 사실 같은 것들이 걸러지는 중이다. 이후 비슷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이를 반영할 것이다. 또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출연진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겠다는 것도 새로 드러난 사실이다. 과도기적인 단계에서 발생하는 이슈라고 생각한다. 유튜브는 시청자들의 규제가 가혹한 플랫폼이다. 댓글 등으로 콘텐츠에 대한 문제 제기도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
-해외진출 생각은.
“사실 유튜브 자체가 글로벌 플랫폼이기 때문에 이미 해외진출을 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현재 트래픽의 40% 정도가 해외에서 나온다. 특히 먹방 같은 논버벌 콘텐츠가 인기있다. 본격적인 해외진출 목표는 현재 중국이다. 중국은 유튜브가 없기 때문에 70여개 팀이 중국 플랫폼에 번역된 콘텐츠를 올리고 있다. 중국에서 인기 있는 채널에서는 번역된 콘텐츠 말고 오리지널 콘텐츠를 요구하는 등 날로 성장하고 있다. 한·중 관계가 다소 경직돼 있지만, 문화교류 측면에서도 한국 크리에이터들의 진출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이준석 등 젊은 세대가 주목받는데 기성세대에게 한마디 한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확실히 변화된 세계가 등장할 것 같다. 많은 기성세대들이 적응을 어려워하거나 변화 자체를 꺼리는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있는데, 물론 변화에 적응할 필요는 있지만 역할 자체를 바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니어들에는 시니어들만의 역할이 있다. 예를 들어 유튜버 김미경씨는 50대지만, 빠르게 바뀌는 인터넷방송 흐름에 가장 잘 적응하는 분 중 하나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시니어를 위한 콘텐츠를 만든다. 유튜브에 시니어를 위한 볼거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장기적 목표나 꿈이 있는지.
“내가 쓸모가 있었으면 좋겠고, 샌드박스가 의미 있는 회사였으면 좋겠다. 샌드박스 없이는 못산다는 사람들이 있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 전체 사회 내에서 나의 역할이 어떤 것일까 늘 고민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해서 ‘우리나라에서 유튜브 제일 잘하는 곳은 샌드박스야’라는 말을 듣고 싶다. 사회가 기업의 쓸모를 인정해주면 이익은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속적인 기업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세상에 없던 회사를 만들고, 그 쓰임을 찾아가면서 사회에 안착시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더라. 샌드박스가 스타트업에서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것. 그것이 첫 번째 목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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