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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조구함의 올림픽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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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30 22:56:41 수정 : 2021-07-30 22:5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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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열띤 환호를 보내지만 금보다 값진 게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캐나다의 로렌스 르뮤가 남자 요트 470급에 출전해 힘찬 레이스를 펼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 옆에서 경기를 하던 싱가포르 선수들이 바다에 빠졌다. 2위를 달리던 르뮤는 경기를 중단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경쟁자들을 구한 뒤 레이스를 재개했으나 그의 기록은 22위로 밀려났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그에게 스포츠맨십을 상징하는 쿠베르탱 메달을 수여했다.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에선 육상 여자 5000m 예선에 출전한 뉴질랜드의 니키 햄블린이 경주 도중에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뒤따르던 미국 선수 애비 다고스티노까지 햄블린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미국 선수는 자신의 경기를 망친 상대 선수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경쟁자를 일으켜 세우더니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관중석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나란히 하위권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두 선수는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도 올림픽 정신을 빛낸 명장면이 나왔다. 29일 유도 남자 100kg급 결승전에서 아깝게 금메달을 놓친 조구함은 종료 휘슬이 울리자 우승자인 일본의 에런 울프 선수의 손을 번쩍 들었다. 조구함은 준결승에서도 포르투갈의 조르지 폰세카에게 절반승을 거둔 뒤 패자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국제대회에서 친분을 쌓아 선물도 주고받던 친구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 올림픽에서 부상으로 중도 탈락했던 조구함은 무릎연골이 거의 남지 않아 보호대를 차고 훈련했다. 고된 훈련으로 엄지손가락을 뺀 나머지 손가락은 완전히 펴지지도 않는다. 그는 “이 손을 보면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겐 훈장과 같다”고 얘기한다. 누구보다 금메달이 간절한 처지였지만 그는 자기를 넘어뜨린 승자를 축하하고 패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조구함의 이름은 나라 조(趙)에 ‘구함’을 붙인 것이다. ‘나라를 구하라’는 의미가 담겼다고 한다. 비록 금메달을 놓치는 바람에 위기의 한국 유도를 구하진 못했지만 그가 빛낸 것은 올림픽 정신이었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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