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아픔 못 잊어… 어떠한 고통도 이겨낼 것”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다가 크게 다친 미군 부사관이 한국에서 군생활을 이어가며 동료 장병들들한테 ‘재활’에 대한 의지의 중요성을 알려 감동을 주고 있다.
8일 미 육군에 따르면 수송 병과의 베테랑 군인 해리 윌리스 상사는 현재 대구에 있는 주한미군 제19지원사령부에 복무 중이다. 그는 이라크 전쟁 당시 교전 중 부상으로 퍼플하트(Purple Heart) 훈장을 받았다. 미군이 1932년 도입한 퍼플하트는 복무 기간에 전사했거나 부상한 상이군인들한테 수여하는 훈장이다.
윌리스 상사에겐 아픈 기억인 큰 부상은 2005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교생 시절 레슬링 선수로 활약했을 만큼 운동신경과 체력이 남다른 윌리스 상사는 그때 약 1년에 걸친 이라크 복무를 마치고 전출 명령만 떨어지길 기다리는 상태였다. 장갑을 두른 트럭 등 군용 차량 36대로 구성된 긴 수송 행렬 속에서 그도 차량 한 대의 운전을 맡아 상부 명령에 따라 신속히 이동하고 있다.
매복해 있던 적이 조명탄을 터뜨리곤 미군의 차량 행렬에 기관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운전석에 있던 윌리스의 다리를 총알 파편이 관통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다리가 저렸어요. 솔직히 나는 총알을 피했다고 생각하며 웃기 시작했죠. 하지만 다리 아래에 피가 고이는 모습을 보고선 제 심정이 금방 공포로 변했습니다.”(윌리스 상사)
상처가 심각했지만 윌리스 상사는 그가 몰던 차량을 계속 운전했다. 갑자기 멈추면 수송 행렬에 속한 다른 차량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격 지점으로부터 거의 1마일(약 1.6㎞)가량 이동해 안전한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운전대를 놓고 의무병을 불렀다.
윌리스 상사는 수술과 재활을 위해 여러 군(軍)병원을 거쳤다. 텍사스주(州) 포트 샘휴스턴 육군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는 아주 특별한 손님의 위로 방문을 받기도 했다. 다름아닌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미군의 이라크 침공을 결정한 장본인이다. 어찌 보면 그가 윌리스 상사한테 미안한 감정을 느낄 법도 했지만 둘은 예상과 달리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부시 대통령은 윌리스 상사의 회복을 격려했다.
치료를 위해 이라크를 떠나기 직전 퍼플하트 훈장을 받은 윌리스 상사는 이후 재활에만 몰두했다. 다리에 입은 총상 여파로 발가락을 잘 움직일 수 없게 됐지만 윌리스는 아무튼 자신의 몸 상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치료 기간 약해진 체력을 회복하는 데에도 착수했다. 부상 전에는 2마일(약 3.2㎞)을 10분38초에 주파했으나 이제는 13분이나 걸렸다. 그래도 미 육군 장병한테 요구되는 체력 조건을 훨씬 상회하는 좋은 성적이었다. 그는 당당하게 현업에 복귀했고 이후로도 씩씩하게 전투 현장을 누볐다.
미 육군 수송학교 교관을 거쳐 그가 부임한 곳은 다름아닌 한국이다. 대구 캠프 헨리에서 복무하며 한국의 주요 도로 등 전시 수송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꿰뚫었다. 요즘은 우수 부사관들로 구성된 일종의 자원봉사 단체에서 일하며 후배 부사관 및 병들한테 군인 정신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부상한 장병들한테 자신의 재활 및 회복 경험을 소개하며 ‘용기를 잃지 말라’고 설득하는 일에 앞장선다.
“2005년 9월 이라크에서 시작된 고통과 여정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어제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죠. 그날 이후 저는 어떤 고통과 마주칠 때 늘 이라크에서 겪은 그 상황과 비교합니다. 만약 이라크 시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낫다는 생각이 들면 저는 (고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무조건 이겨냅니다.”(윌리스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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