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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설립하고 동문 상대 모금… “한푼이라도 더” 묘수 짜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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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0-05 06:00:00 수정 : 2021-10-05 07: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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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난 대학들, 기부금 조성 사활

등록금 동결 장기화에 입학정원 감축돼
코로나까지 겹쳐 재정 여건 갈수록 악화
대학총장들 취임 뒤 “기금 유치 최우선”
‘소액 기부금’ 동문 숫자 늘리기 안간힘

2020년 성균관대 524억 모아 최다 기록
수도권 상위大 전체 절반 차지 ‘쏠림’ 여전
교직원 기부금 강요·모금방식 등 잡음
“학교 재정 효율성·투명성 개선도 필요”
#1. “미국 대학 총장의 첫째 미션은 기금 조성이다. 나도 (총장 재임 기간) 총 1950억원의 기금을 모았으니, 하루 1억원 이상을 한 셈이다.”

신성철 전 카이스트(KAIST) 총장이 지난 2월 22일 열린 이임식에서 기금 조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후임 총장에게 한 말이다. 신 전 총장은 “총장이라는 자존심을 버리고 발전 기금을 모으는 데 총력을 다했다”고 술회했다.

#2. 대구의 한 4년제 대학에 신규 채용된 박모(39) 교수는 요즘 급여명세서를 볼 때마다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최근 학교 측이 ‘발전기금’으로 월급의 10%가량을 꼬박꼬박 공제하고 있어서다. 박 교수는 “학교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지만 교직원들의 주머니에 너무 의존하는 것 아니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대학들이 경쟁력 확보를 명분으로 앞다퉈 발전기금 모으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13년째 이어진 등록금 동결과 입학금 폐지, 대학 구조개혁 평가 등에 따른 입학정원 감축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까지 겹치면서 지역대학 교육 재정과 여건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어서다.

◆“그래도 동문”… 대학마다 기부 참여 독려

4일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의 대학정보공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4년제 사립대(195개교)에 들어온 기부금은 총 5619억원이다. 2019년 대비 688억원(10.9%) 감소했다. 코로나19 창궐 이전인 2019년 한 해 기부금이 2018년보다 291억원 증가한 것과 비교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사립대학의 외부 모금활동이 위축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학생 등록금만으로는 우수교수진과 교육 시설을 마련하기엔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돈이 들어올 곳이면 어디든 손을 벌리는 게 요즘 대학들의 현실이다. 재정의 대부분을 등록금 수익에 의존하는 대학들은 등록금 동결 장기화 여파로 심각한 재정난을 호소한다. 각 대학 총장들이 취임한 뒤 기금(발전기금) 유치를 항상 우선순위 사업으로 꼽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최근 코로나19로 유학생 유치조차 어려워지면서 대학들은 기부금을 한 푼이라도 더 모으기 위한 묘안을 짜내고 있다. 경기 의정부시 신한대와 대구보건대학은 캠퍼스에 후원자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아 ‘대학 발전기금 명예의 전당’을 설치했다. 대전 한남대는 이광섭 교수가 총장 취임식에서 대학에 1억원을 쾌척해 ’한남사랑 100인 기부 운동’의 1호가 되면서 교수, 동문 등 45호 기부자가 나오는 등 기부 릴레이로 이어지고 있다. 대전대는 2017년부터 매년 동문골프대회, 바자회를 열어 성금을 모아 장학금으로 준다.

국공립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전남대는 기금 운용을 위해 별도 재단까지 설립했다. 재단 홈페이지에 매월 기부현황과 기부금을 공개한다. 유니스트(UNIST·울산과학기술원)도 조만간 발전 재단을 설립한다. ‘유니스트 비전 기금’, ‘장학·연구·인프라 기금’ 조성이 핵심이다. 이용훈 총장은 “발전재단 설립은 유니스트 향후 10년을 가꿀 알찬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대학들은 동문을 상대로 한 모금에도 총력을 쏟고 있다. 불황 여파로 기업의 기부금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소액이지만 꾸준하게 기부금을 내는 동문 숫자를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구한의대는 ‘수호천사 캠페인’을 벌여 발전기금을 납부할 동문 1만명을 모집하고 있다. 1구좌 1만원의 소액 후원으로 학생들을 위한 장학사업, 교육 연구시설 확충에 쓴다. 계명대는 더 많은 지역민과 학교 동문이 편리하게 발전기금을 기부할 수 있도록 ‘대학기부금 간편이체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524억원 vs 2900만원’… 수도권 쏠림 심화

수도권 사립대에 대한 ‘쏠림 기부’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정보공시센터에 공시된 기부금 현황(교비회계 기준)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수도권 4년제 사립대 65개교의 총 기부금은 3842억원이다. 반면 비수도권 4년제 사립대 91개교의 총 기부금은 수도권 대학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777억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가장 많은 발전기금을 모은 대학은 성균관대로 524억600만원을 기록했다. 이어 고려대 401억7000만원, 연세대 326억1000만원, 한양대 138억8000만원 등의 순이었다. 수도권 상위 대학의 기부금 규모가 전체 대학의 절반가량을 차지해 사실상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들 대학과 달리 경주대는 2950만원으로 기부금 규모가 가장 낮았고, 신경대 3910만원, 한국국제대 6963만원, 대구예술대 9240만원으로 1억원 미만을 기록했다. 전문대학의 기부금 수입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수도권(42개교)과 비수도권(81개교) 전문대학의 총 기부금은 183억원, 190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25.6%, 34% 줄었다. 한 지방대 관계자는 “올해는 아예 기부금 모금을 포기한 지방대가 수두룩하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대학들의 기부금 모금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부작용 또한 만만찮다. 교직원들에게 기부금을 강요하거나, 무리한 모금방식으로 잡음을 낳고 있는 대학이 상당하다.

일부에서는 대학이 자구 노력 없이 말하기 쉬운 동문에게 시도 때도 없이 손을 내미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모(54)씨는 “불과 수년 전에도 지인을 통해 모교에 발전기금을 내달라는 부탁을 받고 마지못해 적지 않은 금액을 냈는데 최근 또 발전기금을 요구해 난감한 상황”이라고 했다.

경기대 교수회는 지난 1월 전직 총장이 교수 채용 과정에서 발전기금을 빌미로 3차례에 걸쳐 2억원을 편취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경찰에 고발했다.

인제대는 지난해 11월 총장이 교직원들에게 대학 발전기금 명목으로 기부를 권유해 논란이 됐다. 대학 측이 4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외부 컨설팅을 받은 결과, 학교 발전을 위해서는 미래 교육 혁신을 위한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며 교직원들에게 이메일로 발전기금 모금을 내도록 권유한 것이다.

대학 교수평의회 관계자는 “여전히 낮은 급여와 빈약한 복지 수준에 허덕이는 교원과 직원을 상대로 발전기금 약정서를 돌리는 행위는 위장된 폭력”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학 측은 다른 대학에서도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자발적 기부 모금’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광주시는 2019년 ‘특혜 의혹’ 논란으로 전남대 로스쿨 장학금(9억원) 지원을 폐지하기도 했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관계자는 “대학들이 무조건 기금을 ‘모으고 보자’는 식의 경쟁에 뛰어들기에 앞서 학교 재정의 효율성, 투명성 개선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구·광주·청주=김덕용, 한현묵, 윤교근 기자, 전국종합 kimd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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