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보유 물량 대규모 매도하는 ‘러그풀’ 의혹
투자 전 개발자 신원 등 코인 정보 면밀히 살펴야

가상화폐 개발자가 투자자들의 돈을 갖고 사라지는 이른바 ‘러그풀(rug pull)’ 사례가 또 나왔다. 신생 가상화폐를 빙자해 투자자들을 모은 뒤 개발자 측이 보유한 물량을 대규모로 매도하고 잠적한 것이다. 이 같은 ‘먹튀’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서는 투자하기 전 가상화폐 개발자 신원이 확실한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2일 가상화폐 시황 중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은 가상화폐 ‘스퀴드게임’에 대해 “공식 웹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더는 기능하지 않으며, 해당 가상화폐를 사고팔 수 없다는 복수의 보고를 받았다”고 공지했다. 실제로 현재 스퀴드게임의 홈페이지는 사라진 상태다. 코인마켓캡은 스퀴드게임 시세와 거래량 등의 정보 제공을 중단했다.
미국 CNN 또한 같은 날 스퀴드게임의 가격이 개당 2861달러에서 5분 만에 0.00079달러까지 급락했다고 보도했다. 개발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물량을 동시에 매도한 데 따른 영향으로 분석된다. 한때 1억7400만달러(약 2050억원)에 달했던 시가총액도 280만달러까지 쪼그라들었다. CNN은 스퀴드게임 개발자들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스퀴드게임은 지난달 26일 개당 0.01달러의 가격으로 출시된 가상화폐다. 개발자 측은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영감을 받아 발행한 코인이라고 밝혔다. 드라마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오징어 게임의 선풍적인 인기에 덩달아 큰 관심을 받았다.
개발자들은 한발 더 나아가 해당 가상화폐로 참가비를 낼 경우 자신들이 주최하는 ‘오징어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극 중 등장하는 6개 게임을 이번 달 중 온라인 게임 형식으로 진행할 예정인데, 이때 해당 가상화폐를 참가비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 참가비는 1인당 스퀴드게임 1만5000개다. 첫 출시된 시점을 기준으로는 150달러, 고점 기준으로는 약 4300만달러에 달한다.

스퀴드게임은 전형적인 러그풀 사례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러그풀은 원래는 카펫을 갑자기 끌어당겨 그 위에 서 있는 사람을 쓰러뜨리는 행동을 의미한다. 영미권 가상화폐 커뮤니티에서는 개발자가 보유 물량을 한 번에 팔아 시세 차익을 얻은 뒤 잠적하는 ‘먹튀’를 일컫는 표현으로 쓰인다.
러그풀은 가상화폐 투자업계에서 종종 일어난다. 올해 5월에도 ‘디파이(Defi)100’가 있었다. 이들은 당시 공식 홈페이지에 “우리는 당신들에게 사기를 쳤고, 당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문구만 남긴 채 돌연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투자자들의 손실액은 3200만달러로 추정된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시기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한국판 도지코인’을 표방한 ‘진도지코인’이다. 도지코인이 일본 시바견을 마스코트로 삼은 것을 본떠, 진돗개를 내세우며 도지코인의 대항마 역할을 자처했다. 지난 5월 발행 당시 개발자 측은 2분기 이내에 해당 가상화폐를 거래소에 상장할 예정이라며 1000조개를 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았음에도 진도지코인은 탈중앙화 프로토콜(거래소를 거치지 않고 투자자끼리 거래를 하는 방식)인 유니스왑을 통해 거래됐다. 발행과 동시에 급등세를 보이던 진도지코인은 5월 13일 갑자기 97% 가까이 급락했다. 149조7000억개가 한꺼번에 매도됐기 때문이다. 직후 공식 홈페이지와 SNS 등은 모두 폐쇄됐다.
관련 업계에서는 러그풀을 피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해당 가상화폐의 정보를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특히 투자하려는 가상화폐가 제3자의 감사를 받았는지, 개발자의 신원이 명확하게 공개됐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발행 초기 소유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개발자 측이 지나치게 많은 물량을 갖고 있을 때는 최악의 경우 러그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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