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사막 거대한 ‘쓰레기옷 산’으로 신음
전 세계 의류 절반 구입 1년내 쓰레기로
합성섬유, 타이어·플라스틱만큼 악영향
패션산업,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 10% 차지
의류 제조 과정 물 낭비·수질 오염도 심해
지난달 폐막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전후로 패션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패션 업계 역시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 패션의 미래와 지속 가능성을 고민 중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머지않아 저가 의류를 대량생산하는 패스트 패션, 일명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가 자취를 감출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칠레 사막이 ‘쓰레기 산’ 돼 버린 사연
칠레 북부 아타카마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으로 유명하다. 그런 아타카마사막이 최근 형형색색 옷들에 뒤덮인 ‘쓰레기 산’으로 변모한 모습이 알려져 우려를 낳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칠레는 오랫동안 중고나 팔리지 않은 옷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해 왔다. 중국이나 방글라데시에서 만들어져 아시아와 유럽, 미국을 거친 옷들이 한데 모여 다른 중남미 국가들로 팔려 나간다.
매년 칠레로 밀려오는 의류는 약 5만9000t. 그중 최소 3만9000t이 아타카마사막에 버려진다. 생분해성이 없는 데다 화학 성분이 함유돼 있어 지자체 매립지들에서 퇴짜를 맞은 것들이다.
AFP통신은 지난달 초 “아타카마사막이 갈수록 패스트 패션으로 오염돼 고통받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칠레 정부는 섬유·의류 수입업체들에 폐기물 처리 책임을 지울 방침이다.
칠레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매년 옷 약 1000억점이 만들어져 절반 이상은 구입 뒤 1년 안에 매립지나 소각장으로 보내진다. 패션 산업은 세계에서 규모가 3번째로 큰 제조업이다.
또 폴리에스터 등 합성섬유는 완전히 분해되는 데 최장 200년이 걸린다. 화학적으로 합성한 섬유인 탓에 타이어나 플라스틱 폐기물만큼이나 환경에 해롭다.
패션 산업은 생산 단계별로도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구온난화 주범인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8∼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의 비영리 환경 연구기관인 세계자원연구소(WRI)는 최근 발간한 ‘넷제로(온실가스 순배출량 0, 탄소중립) 로드맵: 과학에 기반한 의류 부문 목표 산출’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의류의 경우 2019년을 기준으로 원자재 추출부터 원사 등 가공, 완제품 생산까지 이산화탄소 1.025Gt(기가톤), 즉 10억2500만t을 배출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에 해당한다.
WRI는 현 추세대로라면 의류 부문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30년엔 1.588Gt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물 낭비와 수질오염도 심각하다. 의류 제조 과정에서 매년 500만명이 생존에 쓸 수 있는 물 양인 930억㎥를 쓰고, 세계 폐수량의 20%를 버린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만 물 7500ℓ가 든다.
◆업계 ‘새활용’ 자구 노력 활발… 재활용률 높여야
각국 패션 업계 안팎에선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자구 노력을 하고 있다.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새활용’(Upcycling·업사이클링)이 대표적 예다.
인도의 친환경 패션 브랜드 두들리지(Doodlage)는 옷 공장에서 수거한 자투리 천 조각을 잇대 드레스와 인도 전통 의상인 사리를 만든다. 버리는 건 없다. 옷을 만들고 남는 건 가방과 지갑, 봉제완구, 포장재를 만드는 데 쓴다.
옷의 가격은 100달러(약 12만원) 정도다. 인도의 물가를 감안하면 결코 싸지 않다. 공동 창업자인 크리티 툴라는 “제품 가격은 재활용된 옷에 돈을 낼 만한 가치가 있다고 고객들이 느끼는 것보다 높아야 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섬유 수출업체에서 일하며 옷감과 물이 낭비되는 실상을 목도하고 창업에 나선 그는 “우리가 입는 모든 것은 결국 우리가 먹고 마시며 숨쉬는 모든 것에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칠레의 경우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순환 경제란 쓰레기를 줄이고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경제 시스템을 말한다. 자원을 계속 재활용하는 자원 순환에 초점을 맞춘다.
에코시텍스(Ecocitex)는 버려진 섬유와 의류들로 실을 만든다. 2019년 문을 연 이 사회적 기업에선 매주 폐기물 약 1t이 실로 재탄생한다. 그 과정에서 물이나 화학물질은 쓰지 않는다. 취약 계층도 돕는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노숙인들에게 털모자 1000여개를 기부했다.
그보다 1년 앞서 설립된 스타트업 에코피브라(EcoFibra)는 버려진 의류, 폴리에스터섬유 등으로 방음재를 만든다.
다만 업계 전체적으로는 재활용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늘날 1% 미만의 헌 옷이 새 옷으로 바뀐다”며 “의류 재활용이 빠르게 증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현재 기술로는 폴리에스터 등이 혼합된 섬유를 제대로 분류해 재생하지 못하는 탓이 크다. 의류 수거 인프라도 미비한 상태다. 일례로 스페인 패스트 패션 브랜드 자라(ZARA)를 보유한 인디텍스(Inditex)는 지난해 출시한 제품 45만t의 3%만 고객들로부터 회수했다.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해야… 패스트 패션 미래는?
한편에선 업계 전반에 걸친 노력도 진행 중이다. COP26이 한창이던 지난달 5일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은 새로운 ‘기후 행동을 위한 패션 산업 헌장’을 발표했다. 이 헌장에 서명한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나이키 등 130여개의 패션 브랜드들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2018년 세웠던 목표치를 상향 조정한 것으로, 목표 달성을 위한 계획을 1년 안에 제출해야 한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적했다.
결국 가장 좋은 해결책은 의류를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업계 내부에서도 패스트 패션의 종말을 점치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럽 최대 온라인 패션몰 잘란도(Zalando)의 로베르트 겐츠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0월 FT 인터뷰에서 “패션 산업은 세계적인 지속 가능성 문제의 일부분”이라며 “세계 의류 업계는 향후 10년 안에 패스트 패션 사업 모델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도 변화를 위해 자체적으로 노력하고는 있다. 대표적으로 폴리에스터섬유를 만드는 데 드는 원자재 양을 줄이려 하는데, 비용 증가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WSJ는 전했다.
스웨덴 패스트 패션 브랜드 H&M은 계열사 코스(COS)의 지속 가능성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코스는 환경친화적 브랜드를 지향하며 올해 출시한 제품 86%를 유기농·재활용 소재로 만들었다. 이 비율을 100%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현실적으로 패션 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람들이 옷장의 옷을 더 많이 입는 것이다. 순환 경제로의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활동하는 영국의 엘런 맥아더 재단에 따르면 기존 옷을 입는 횟수를 2배 늘리면 의류 부문 탄소 배출량을 44%까지 감축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소수의 의류 업체를 중심으로 고무적인 움직임이 일고 있다. 청바지 원조인 미국 리바이스는 올해 4월 ‘더 좋은 옷을 사고 더 오래 입으라’(Buy Better, Wear Longer)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미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이보다 앞선 지난해 12월 의류 산업 변화를 위한 ‘덜 사고 더 요구하라’(Buy Less, Demand More)는 캠페인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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