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주범 텔레그램 빠져 실효성 없다?
해외사업자라서 아닌 사적대화방이기 때문
필터링 조치, 검열 여부 다툼의 여지 있어
모호한 법 적용 대상 사적검열 우려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의원 50여명도 찬성
“실제로 성폭력을 방지하거나 피해자를 구호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되는데도 이런 애매한 법을 둠으로써 우리가 n번방 사건에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운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당시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
“(성착취물) 유통을 막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 조항이 필요하다.”(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
실효성 여부와 ‘검열’ 논란으로 정치권 안팎에서 화제가 된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 관련 핵심 쟁점은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 과정에서 나온 당시 두 여당 의원의 발언에서 알 수 있다. ‘법의 취지는 공감하나 실효성이 없고 부작용이 우려된다’와 ‘한계가 있더라도 범죄를 방치할 순 없으니 최선의 조치를 해야 한다’로 요약된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n번방 방지법은 불법 촬영물이 유포돼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국내에서 사업을 하는 연 매출 10억 원 이상’ 또는 ‘일평균 이용자 10만 명 이상 인터넷 사업자’ 등의 부가통신사업자에게 불법 촬영물 유통 방지 책임을 부과한 것이 골자다. 그 후속 조치로 지난 10일부터 네이버와 카카오 등 포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게재되는 동영상은 사전에 불법 촬영물인지 확인받는다.
법 제정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지만 후속 조치가 시행되면서 이 법이 ‘검열’로 작동할 수 있다는 비판이 다시 제기됐다. 특히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서 비판이 거세다. 윤석열 대선 후보는 이 법을 두고 “검열의 공포”라고 규정했고, 소속 의원들은 재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이준석 대표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에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지난 13일 이런 의혹을 ‘팩트체크’한 설명자료를 내며 논란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n번방 방지법을 둘러싼 오해와 우려를 정리해봤다.
─고양이 영상·여성 BJ·게임 캐릭터 사진 공유할 수 없다?
윤 후보도 지적한 ‘고양이 동영상 검열’은 사실이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여성 BJ·게임 캐릭터 사진을 올렸다가 이용제한을 받았다는 일부 누리꾼들의 주장도 n번방 방지법과는 무관하다. 불법 촬영물이 아니어서 모두 공유할 수 있다.
고양이 동영상 등 일부 영상이 검열된다는 의혹은 안내 문구를 오해한 결과다. 법이 적용되는 ‘온라인 공간’에 이용자가 영상물을 올리면 영상 크기에 따라 수초간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불법 촬영물에 해당하는지 검토 중”이라는 문구가 뜬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가진 불법 촬영물의 특징값(DNA)과 이용자가 올린 영상의 특징값을 비교·대조해 해당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방통위는 “확인결과 (논란이 된) 고양이 영상(혹은 사진)은 차단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여성 BJ이나 게임 캐릭터 사진 등을 올렸다가 이용제한 조치를 받았다면, 이는 n번방 방지법이 아닌 네이버와 카카오 등 인터넷 사업자의 운영정책 위반에 따른 것이다. 국내 인터넷 사업자와 메타(옛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해외 사업자는 음란물, 불법 사행성 도박 사이트 홍보, 개인정보 유출 등의 행위를 신고받으면 자체 운영정책에 따라 이용제한 등의 조치를 한다.
─사전검열 혹은 사적검열로 볼 수 있나
헌법은 언론·출판에 대한 검열을 엄격히 금지한다. 이 때 사전검열은 행정권이 주체가 돼 표현물의 내용에 대해 사전심사를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표현물의 제출의무 등 강제 수단의 요건을 충족할 때 해당한다.
방통위는 △정부는 사업자의 필터링 조치 이행 의무를 점검할 뿐 ‘직접’ 심사하지 않고 △영상물의 DNA를 비교할 뿐 ‘내용’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며 검열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또 사적검열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필터링 대상은 ‘일반에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로 제한돼 공개 게시판 등 공적 공간에만 적용되고 사적 대화방은 포함되지 않아서다.
하지만 필터링 조치가 사전검열 요건에 해당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정부가 아닌 인터넷 사업자가 영상물 DNA 비교 작업을 하지만 그 기준이 되는 불법 촬영물 DNA 데이터베이스는 사업자가 아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즉 정부가 구축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오픈넷 최지연 변호사는 “행정권이 주체가 아니라는 정부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면서도 “방심위에서 심의·의결한 DNA 데이터베이스에 따라 콘텐츠가 규제되기 때문에 헌법상 사전검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최 변호사는 “‘내용을 들여다본다’는 게 사람이 일일이 영상물을 본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업로드되는 동영상의 DNA를 추출해서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하는 과정이 정보를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통신의 자유 등 기본권 침해 여지도 있다는 지적이다. 오픈넷은 지난 3월 n번방 방지법을 두고 “법의 취지는 공감하나 플랫폼이 이용자의 모든 통신 내용과 공유 정보를 사전에 모니터링하게 해 이용자의 통신의 비밀, 표현의 자유, 알 권리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앞으로 n번방 방지법이 사적검열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은 카카오톡이 이슈가 돼서 정부가 ‘개인 간의 사적 대화방(1:1 또는 단톡방 등)’은 필터링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90여개에 달하는 인터넷 사업자의 사적·공적 공간을 명확히 나누기 어려워서다. 정부는 ‘공개 서비스’라는 큰 틀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사업자가 적용 대상을 구체화하는 식이다. 이때 기업은 법 위반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규제 범위를 넓혀 최대한의 조치를 할 수 있다. 사적검열을 우려하는 배경이다.
─불법 촬영물 유통을 막는 데 효과 있나
n번방 사태가 일어난 ‘텔레그램’이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는 이유로 법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해외 사업자를 규제하기 어려워 제3지대에서 불법 촬영물이 유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 조항에는 ‘국외에서 이뤄진 행위도 국내 시장 또는 이용자에게 영향을 미칠 경우 적용한다’는 역외적용 규정이 있지만, 실질적인 구속력을 갖지는 못한다. 지난해 법 시행 당시 국회입법조사처도 해외 플랫폼을 규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국내 사업자의 역차별을 우려한 바 있다.
정부는 국내외 사업자에게 법을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또 텔레그램이 적용 대상에서 빠진 건 해외 사업자여서가 아니라 사적 대화방에 해당해서라고 덧붙였다. n번방 방지법으로 거를 수 없는 불법 촬영물은 경찰의 잠입수사와 국제공조 수사 등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계가 있지만 “이번 조치는 불법 촬영물 재유포로 인한 2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당이 독단으로 밀어붙였다?
사실이 아니다. 지난해 5월20일 n번방 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재석 의원 178인 중 찬성 170인, 반대 2인, 기권 6인이었다. 찬성 의원 상당수는 민주당 소속이었지만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50여명도 찬성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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