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세계 85%의 통상 영토 확보
美, 인도·태평양기구로 中 견제
국익 기반 새 통상전략 구상해야
올해 2월 1일, 한국에서도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아르셉)이 발효되었다. 아르셉은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3개국, 호주·뉴질랜드까지 15개국이 참여한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이로써 영토 면적이 세계의 0.1%도 안 되는 한국은 85%의 통상 영토를 확보하게 되었다. 국내총생산의 3분의 2를 무역에 의존하는 한국에 아르셉의 출범은 호재가 틀림없다.
실제로 한국은 중국, 일본과 함께 아르셉의 혜택을 가장 많이 입을 국가로 꼽힌다. 아르셉 출범으로 늘어나는 국민소득은 중국 1000억달러, 일본 460억달러, 한국 230억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한국 무역에서 아르셉의 무역 비중은 51%에 달한다. 특히 한국은 수출에서 중간재의 비중이 72%를 넘어 원산지 누적과 규정 통합의 혜택도 기대된다.
그런데 아르셉의 앞길이 평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아르셉에 처음부터 미국의 자리는 없었고, 최종 협상에서 인도가 빠져나왔다. 아세안이 산파 역할을 했지만 중국(EAFTA·동아시아자유무역지대)과 일본(CEPEA·동아시아 포괄적 경제파트너십)이 각각 주도권을 갖고 추진한 FTA 대결에서 인도가 하차하면서 중국이 1승을 거둔 셈이다. 각 회원국에서 중국의 존재감도 압도적이다. 전 세계 무역의 14.7%를 차지하는 중국의 역내 수입시장 점유율은 15~40%로, 무려 12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과 무역을 넘어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아르셉이 중국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을 보아 넘길 리 없다. 올해 2월 11일,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판 인도·태평양 전략서인 “Indo-Pacific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를 발표했다. 전략의 목표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질서 수립을 위해 지역의 연결성, 번영, 안보, 복원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미국과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에 가장 유리한 질서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 실천계획의 하나로 제시한 것이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이다. IPEF는 올 상반기 중 수준 높은 무역과 인프라, 디지털 거버넌스, 공급망 복원 및 안보 등을 도모하는 파트너십으로 출범할 예정이다.
IPEF의 출범과 함께 미국의 신통상질서 건설은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2001년 중국에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통해 초고속 성장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내어준 미국은 탈많은 고속도로 대신 최첨단 고속도로 공사에 착수했다. 미국에 통행권을 부여받은 국가들만이 이 새로운 고속도로를 달리게 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해 온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쿼드를 비롯한 안보·통상 협의체 구축을 위한 일련의 준비 작업들이 IPEF로 결집될 가능성이 높다.
IPEF뿐이 아니다. 일본·인도·호주의 3자 공급망복원구상(SCRI),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등 다양한 의제별 협의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개별 협의체의 등장은 규범의 파편화를 초래하여 다자 차원의 경제통합에서 발생하는 최선의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대신 해당 의제에 대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유사입장국가(like-minded country) 간의 결속을 다짐으로써 차선의 효과를 도모하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같은 중견국 입장에서는 다자주의 무역질서가 최선이다. 따라서 한국은 다자통상질서 복원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아르셉이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도록 기여하는 한편, 미국을 비롯한 유사입장국가들과의 지역협의체 결성에 대한 입장과 전략도 부지런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당장 오는 5월 하순 바이든 대통령의 한국 방문이 성사되면 IPEF는 핵심 의제가 될 것이다.
현재 대선 정국에서 통상 이슈가 설 자리가 좁아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한국의 선택지를 근본적으로 다시 들여다보고 새로운 패를 구상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보다 유연하고 기민하게, 국익에 기반한 통상전략을 만드는 데 진영을 가릴 일이 아니다. 통상이 곧 국민의 삶이요, 안보와도 직결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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