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시그니처 샐러드 ‘잠자리’
배추·고구마·캐비아 등 이용 보라색 통일
극사실주의 화풍서 영감… 하늘로 날아갈 듯
두번째 시그니처 ‘돼지감자와 아귀 간’
방금 흙에서 돼지감자 캐낸 듯한 느낌 연출
요즘은 치장과 장식 줄여 정제된 요리 선봬

그는 또 호주에서 기존의 일식과는 다른 요리들도 경험했다. 그는 현재 스카이 파티오 바이 류니끄, 돼장, 류니끄 세 곳의 오너셰프다. 이 세 매장은 스타일, 음식, 고객층에서 교차점을 찾을 수 없지만 그의 경험이 모두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스카이 파티오 바이 류니끄는 노르웨이 수산물 위원회 홍보대사 경험, 북유럽을 자주 방문하면서 쌓은 노르딕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이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국 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돼장은 어느 날 문득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떠올리면서 만들게 됐다. 메두사·그리핀·유니콘처럼 돼지 머리에 붕장어 꼬리를 결합, 현실엔 없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본인만의 동화적인 세계를 펼쳤다. 일종의 성인동화 공간을 제공하는 곳이 바로 돼장이다. 이 두 곳은 류니끄가 10년의 만기를 서울 신사동에서 채우고 잠깐 문을 닫은 기간에 탄생한 브랜드다.
류니끄는 류 셰프의 뿌리다. 류태환의 ‘류’와 ‘유니크’(unique)를 합쳐서 만든 단어로 그 자체가 류태환이라고 설명해도 과하지 않다. 이전의 류니끄는 ‘하이브리드 퀴진’(Hybrid Cuisine)을 선보였다. 국내산 제철 재료로 일식과 프렌치의 결합을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풀어서 보여 주곤 했다. 다시 오픈한 류니끄도 전체적인 큰 틀과 관점은 같다. 하지만 영화, 미술, 일식, 양식 등 셰프 본인이 어렸을 때 다양하게 접한 문화가 조금 더 진하게 음식에 녹아난다. 그의 요리는 예술적이고 아름답긴 하지만 먹으면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사실 아쉬움이 매우 크다.

류 셰프의 첫 번째 시그니처 요리는 샐러드인 ‘잠자리’로 계절채소, 산채나물, 토마토를 사용하며 배추, 고구마, 양배추 모두 보라색으로 통일했다. 잠자리 날개는 전남 해남에서 온 자색 배추를 드라이어로 말려 만들고, 자색 양배추 퓌레로 만든 몸통 위엔 충북 충주산 오세트라 캐비아를 올렸다. 꼬리는 천천히 튀긴 자색 고구마, 눈은 자색 배추 피클과 코리앤더 씨앗을 사용했다. 초록색 파슬리오일로 잠자리 한쪽 날개를 추상적으로 표현했는데 극사실주의 화풍에서 영감을 받았다. 마지막에 뿌리는 드레싱은 자색 양배추를 2% 소금물에 발효한 국물로 만들었다.
두 번째 시그니처 요리는 돼지감자와 아귀 간. 시골집 어머니의 텃밭과 관련된 추억을 표현했다. 제철인 돼지감자를 흙 속에서 방금 꺼낸 것처럼 표현했는데, 돼지감자를 로스팅해서 부드럽게 구워 냈고 돼지감자와 채소로 진짜 흙처럼 연출했다. 아래에 깔려 있는 아귀 간 파테의 기름기는 감자의 심심함을 잡아 준다. 입속이 마르지 않도록 제공되는 소스는 돼지감자로 만든 에센스다. 이처럼 ‘리얼’과 ‘페이크’라는 두 단어로 설명이 모두 끝날 수 있을 정도로 이 요리는 재치가 돋보인다. 중간에 센터피스로 올라간 실제 흙과 돼지감자, 그리고 음식으로 제공된 흙과 돼지감자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액자구조 같기도 하며, 동시에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 고민할 수 있는 메뉴라고 할 수 있다. 식사하면서 눈으로 화두를 던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메뉴다. 최근 류 셰프는 이런 퍼포먼스를 덜어 내는 중이다. 점점 치장과 장식을 줄여 보다 정제된 느낌으로 요리를 선보인다.

그는 소비자가 경험하지 못한 걸 먼저 찾아 경험해 보고 소비자가 자신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셰프란 직업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같은 것이라도 나를 통하면 다르게, 누구나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나만의 색으로 만들어 내겠단 것이 그의 요리철학이다. 사람들이 먹고 좋아하면 그 과정을 통해 먹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치유를 받게 된다고 그는 믿는다. 결국 만들어 내는 과정의 고통과 맛있게 소비되는 음식을 통한 치유가 순환하며 계속 성장하는 과정 속에 류 셰프는 서 있다. 오늘도 그는 힘들게 만들어 낸 창작물을 먹고 손님들이 기뻐할 때 쾌감을 느끼며 여러 가지 메뉴를 선보이려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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