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전기차·태양광 보급 확산세
10년 내 폐자원 쏟아져 방치 땐 문제
재사용 생태계 만들어야 지속가능
2022년부터 권역별 거점수거센터 가동
성능검사 뒤 민간업체 매각 선순환
보관설비에 화재 진화 시스템 갖춰
당국, 효율적 운영 위해 BMS 요구
전기차 제조사, 기술노출 우려 꺼려
폐패널 ‘EPR 갈등’ 해결 등도 숙제
“대개 전기차 배터리팩이 납작한 형탠데, 이건 모양이 완전히 다르게 생겼어요.”
지난 10일 오후 경기 시흥시 미래폐자원 거점수거센터. 김기현 한국환경공단 차장은 항온장치 안에 놓인 르노코리아 전기차 ‘SM3 Z.E.’의 폐배터리팩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 폐배터리팩에 꽂힌 여러 가닥 전선은 항온장치를 빠져나와 충·방전 기기에 연결돼 있었다. 완전 충전과 방전 작업을 거치면서 폐배터리팩에 대한 성능검사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김 차장은 “25도로 유지되는 환경 속에서 최고 전압까지 올렸다가 낮은 전압까지 내리면서 전류량을 측정한다”며 “이런 시험을 통해 폐배터리 용량을 확인하고 잔존수명(SOH)을 계산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충·방전 기기 앞에 설치된 모니터에는 변화하는 전압·전류에 따라 실시간으로 계산된 용량값이 표시되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이 폐배터리가 원래 장착돼 있던 차량의 제조사·차종·연식과 함께 제조 당시 공식 배터리 용량값이 기입돼 있었다.
보통 공식 용량 대비 60% 이상 사용할 수 있다고 확인된 폐배터리팩은 민간업체에 매각된 뒤 모듈·셀 단위로 해체돼 전기자전거·오토바이,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으로 재사용된다. 60%보다 낮은 경우 폐배터리에 쓰인 리튬, 코발트, 니켈 등 원자재를 추출하는 식으로 재활용된다.
이런 재사용·재활용이 이뤄지지 못하면 수명이 다한 전기차 배터리는 말 그대로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다. 전기차가 수송 부문 탄소중립 핵심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2030년이면 한 해 폐배터리 발생량이 10만개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태양광 패널도 마찬가지다. 발전 부문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핵심 기술 중 하나로 평가돼 보급량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그만한 양이 언젠가는 폐패널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수명이 다한 패널이 2033년이면 2만8000t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우리가 탄소중립을 앞당길 거라 믿는 전기차 배터리·태양광 패널에 ‘배신’당하지 않으려면, 이들 미래폐자원의 순환체계를 늦지 않게 구축해야 한다. 폐배터리·폐패널이 그저 쓰레기로 버려지지 않고 다시금 배터리와 패널로 재사용·재활용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지속가능한 탄소중립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 된 것이다.
◆시간당 80개 자동 입·출고, 불나면 수조로
기자가 찾은 시흥시 미래폐자원 거점수거센터는 그런 생태계 조성을 위해 정부가 심어 놓은 ‘씨앗’들 중 하나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은 올해부터 미래폐자원 회수·보관·매각 등을 지원하기 위해 수도권 관할인 시흥시 센터와 함께 대구(영남권), 전북 정읍(호남권), 충남 홍성(충청권) 등 4개 지역에서 미래폐자원 거점수거센터를 정식 운영하기 시작했다.
시흥시 센터에는 현재 폐배터리 290여대가 보관돼 있다고 했다. 이들은 모두 아직까지 성능검사를 거치지 않은 폐배터리로, 올해 1∼4월 성능검사를 거친 81대는 이미 민간업체에 매각됐다. 김 차장은 “절반 정도는 실증연구 목적으로 연구기관에서 사 갔고 나머지 절반은 ESS 제조 목적으로 판매됐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배터리와 달리 지방자치단체 반납 의무가 없는 태양광 폐패널의 경우 아직까지 이 센터에 수거된 사례가 없다고 했다. 폐패널이 들어오는 경우에는 센터가 보유 중인 태양광 모듈 검사장비를 통해 외부 균열 여부와 절연 상태를 확인한 뒤 배터리와 마찬가지로 성능검사를 진행한다.
시흥시 센터에는 다른 거점수거센터와 달리 전기차 폐배터리와 태양광 폐패널을 컨베이어, 크레인 등으로 이동시켜 아파트 7층 높이(약 19m)의 보관 창고에 적재하는 자동화 보관설비가 설치돼 있었다. 실제 센터 직원이 입고대 위에 폐배터리를 올려 놓자, 자동화 설비가 폐배터리 표면에 붙은 바코드를 인식해 빈자리로 이동시키는 모습이었다. 각 폐자원 보관함마다 차이는 있지만 한 개당 평균 1분50초 정도 소요된다. 입·출고가 동시에 가능해 한 시간 기준으로 보면 입고 40개, 출고 40개로 총 입·출고 가능 개수가 80개에 이른다.
이 보관설비는 자동 화재감지·진화 시스템도 갖춘 모습이었다. 폐배터리는 분리막이 손상된 경우 보관 중 화재 발생 가능성이 있다. 실제 화재가 발생하면 개별 보관함마다 설치된 열·연기 센서가 반응해 크레인이 불이 난 폐배터리를 자동으로 끄집어내게 된다. 이후 크레인에 부착된 소화장치가 1차로 화재를 진압하고 보관설비에 설치돼 있는 수조로 이동해 폐배터리를 침수시켜 완진한다. 김 차장은 “아직까지 화재가 발생한 사례는 없다”며 “만약의 사고에 대비한 이 설비는 배터리 제조업체인 SK이노베이션의 설비를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산·보급업체가 함께해야 한다
정부가 이런 기술과 설비를 완비하더라도 전기차 배터리와 태양광 패널의 생산·보급 주체인 민간사업자와의 협력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미래폐자원 순환체계 구축은 요원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당장 전기차 폐배터리의 경우 효율적인 재사용·재활용을 위해 전기차 제조사의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차량 내 BMS는 배터리로 인한 안전사고 발생을 예방하고 배터리가 지닌 전기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전압·전류·온도·잔존수명 등을 실시간으로 기록한다. 미래폐자원 거점수거센터가 BMS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면 잔존수명 확인을 위한 성능검사를 건너뛸 수 있다. 현재 센터는 수거한 폐배터리의 잔존수명을 확인하기 위해 1개당 약 8시간 소요되는 성능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 차장은 “폐배터리에 대한 검사를 위해 물리적인 해체 작업까지 포함하면 8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소요된다”며 “BMS 정보에 남아 있는 폐차 시 잔존수명만 확인할 수 있다면 이런 시간 소요가 불필요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기차 제조사는 기술 노출을 우려해 BMS 정보 공유에 나서지 않는 상황이다. 미래폐자원 문제에 있어서 생산자 역할 강화라는 공감대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환경연구원은 한국환경공단의 연구용역을 맡아 작성한 ‘미래폐자원 자원순환 정책연구’ 보고서에서 이와 관련해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기본정보 없이 폐배터리를 고속으로 정확하게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건 매우 어렵다”며 “폐배터리 잔존가치가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운행 중에 어떤 이력을 가졌느냐에 따라 이후 성능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BMS와 같은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보 공유가 유발할 수 있는 영업이익 침해 가능성을 고려할 경우 전기차 생산업체와 재사용·재활용 업체 간 제공정보 범위를 협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태양광 폐패널의 경우 내년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시행을 앞두고 최근 환경부와 태양광업계가 갈등을 빚는 중이다. EPR는 생산자에게 제품 폐기물에 대한 재활용 의무를 일정량 부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부과금을 매기는 제도다. 환경부는 최근 관련법 시행령에 대한 일부 개정을 통해 태양광 패널 재활용 부과금 산정을 위한 단위 비용을 1㎏당 727원으로 정했다.
태양광 제조업체 단체인 한국태양광산업협회는 이에 대해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환경부가 일방 통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협회 관계자는 “재활용 부과금 단위 비용을 정하면서 그 산정 기준은 공개하지 않았다”며 “비용을 정하는 과정에서 협회 의견 청취 과정이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최근 협회는 이런 절차상 문제를 들어 2019년 EPR 도입을 위해 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와 체결했던 업무협약에 대한 파기를 선언하기도 했다.
협회는 태양광 폐패널 재활용을 위한 공제조합 설립을 추진 중인 가운데 환경부가 협회 측 공제조합 설립 요청을 수차례 반려한 데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태양광 패널은 다른 전자제품이랑 다르게 수명인 25년이 지나도 효율이 떨어질 뿐 사용이 가능한데, 그런 특성에 대한 이해도와 전문성을 겸비한 태양광공제조합이 만들어져야 폐패널 재사용과 그 수출까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환경부는 협회 측 공제조합 요청 반려에 대해 ‘일부 요건 미달’에 따른 조치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공제조합 설립을 위한 최소 요건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 많이 부족해서 반려한 것으로 안다”며 “공제조합 설립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협회를 포함한 업계 측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자리를 곧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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