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고백처럼 사람은 평범
완벽하지 않기에 상처·배신감
반면교사 존재 다시 사랑해야
살면서 꼭 피해야 할 사람의 유형이 있을까? 당장 손절해야 하는 인간 유형들, 언젠가 반드시 나를 배신할 사람의 특징들을 알려주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보았다. 지나치게 과도한 호의를 베푸는 사람, 은근히 비교하는 사람, 기를 빨아들이는 사람,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사람, 매사 비관적인 사람 등 만날수록 정신 건강에 해로운 사람 유형이 10가지도 넘었고, 그런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방법까지 제시하는 글이었다.
나는 내 주위 사람들을 그 잣대로 평가해 보았다. 나에게 스트레스 주지 않는 사람, 내 감정을 소모해도 아깝지 않은 사람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그런 사람만 남기고 인간관계를 싹 정리할 수 있을까? 사람은 변하기도 하는데, 망설임이나 미련 없이 추려내도 될까?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단절 대상이 될 것이다. 왠지 사람을 평가하고 투자 가치가 있는지 저울질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시인은 남다른 통찰을 가진 사람일까? 아무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자존감을 살려주며 희망과 위로를 말하는 인간일까? 여기서 나는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자문하는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시인은 ‘가축을 깨무는 이빨을 자판처럼 박으며 나는 쓰는 사람’이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해 이 장례가 끝나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며 ‘외로워서 못 살겠다’ 말하는 평범한 존재이다. 어쩌면 엮이고 싶지 않은 인간 유형에 속할지도 모른다.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밤을 두드린다. 나무 문이 삐걱댔다. 문을 열면 아무도 없다. 가축을 깨무는 이빨을 자판처럼 박으며 나는 쓰고 있었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해 이 장례가 끝나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뼛가루를 빗자루로 쓸고 있는데 내가 거기서 나왔는데 식도에 호스를 꽂지 않아 사람이 죽었는데 너와 마주 앉아 밥을 먹어도 될까. 사람은 껍질이 되었다. 헝겊이 되었다. 연기가 되었다. 비명이 되었다. 다시 사람이 되는 비극. 다시 사람이 되는 것. 다시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까. 케이크에 초를 꽂아도 될까. 너를 사랑해도 될까. 외로워서 못 살겠다 말하던 그 사람이 죽었는데 안 울어도 될까. 상복을 입고 너의 침대에 엎드려 있을 때 밤을 두드리는 건 내 손톱을 먹고 자란 짐승. 사람이 죽었는데 변기에 앉고 방을 닦으면서 다시 사람이 될까 무서워. 그런 고백을 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계속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고 묻는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나무 문을 두드리는 울음을 모른 척해도 될까.
- 손미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얼마 전 나는 어떤 시인에게 배신감이랄까, 다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작년 말에 뜻밖에도 전화를 걸어와 내 시집을 잘 읽었다며 칭찬과 용기를 준 선배 시인이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배제하셨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쩨쩨하게도 내 속은 며칠 상했지만,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이해했다. 아니, 잊기로 했다. 나도 시를 쓰지만, 나는 시인들을 잘 모른다. 시인들과 거의 교류 없이 작품을 통해 연민이랄까, 사랑, 동질감을 느낀다. 때때로 말과 행동을 달리해서 상처를 주는 건 모든 인간의 기질일지 모른다. 삶은 잔인하며 고통스럽고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에 시를 쓰는 게 아닐까. 다만 편지를 주고받으며 절친한 우정을 나누는 작가들이 부럽긴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녀의 시를 읽고 우는 것”이라고 버지니아 울프는 일기장에 썼다. 버지니아는 이디스 시트웰의 시집을 읽고 감명받아 그녀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으며 많은 서신을 주고받았다. 괴테는 자신보다 많이 어린 실러를 가리켜 “내 존재의 절반인 친구”라고 환대하며 1000통 넘는 편지로 교류했다. 그러나 그들도 서로의 재능을 향한 존경과 동시에 질투도 느꼈다고 한다.
나에게 두통과 구토, 감정적 파문을 일으키는 사람, 반면교사가 되는 존재는 손절 대상이 아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밥을 삼켰던 우리는 다시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김이듬 시인·서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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