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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부는 숭고해야? 이하늬 ‘만삭화보’ 반응으로 본 고정관념 [뉴스+]

입력 : 2022-05-26 06:00:00 수정 : 2022-05-26 07: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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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다” vs “보기 안 좋다”… 누리꾼 갑론을박
만삭 임신부에 요구되는 특정 이미지 드러나
이하늬 “고정적인 시선을 거두는 것부터 시작”
보그 한국판 2022년 6월호에 실린 이하늬의 만삭화보. 보그 제공

패션잡지 ‘보그’가 공개한 배우 이하늬의 ‘만삭화보’를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25일 맘카페, 패션카페 등에선 “멋지다”, “순산하길 바란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많았지만 화보 발간 소식을 전하는 기사엔 “보기 안좋다”는 부정적인 댓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번 화보의 콘셉트가 임신부로서는 다소 파격적이긴합니다. D라인을 드러내더라도 맨살을 보이지 않았던 기존의 연예인 만삭화보와는 달리 이하늬는 크롭탑, 미니스커트 등을 입고 배를 노출하며 ‘힙’한 느낌을 어필했습니다. 여러 콘셉트가 있었지만 특히 머리를 양 옆으로 묶고 밀리터리 자켓을 입은 컷과, 망사 속옷이 드러나는 섹시한 의상이 많은 누리꾼들에 ‘민망함’을 준 것 같습니다. 표정 역시 하나같이 도발적입니다. 

 

이하늬가 인터뷰에서 “임신부도 스스로 섹시하다고 여길 수 있다”고 말하면서 여러 기사에 ‘섹시’가 제목으로 뽑혔습니다. 이때문에 혹평이 줄을 이었습니다. ‘임신부는 섹시가 아니라 숭고함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임신과 태아는 소중하니 품위를 지켜야 한다’ 등 싸늘한 시선이 적지 않았습니다.

 

노출이 민망할 수는 있습니다. 화보 콘셉트 자체가 별로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임신부에게 숭고함과 품위를 강요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 새삼 놀랍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 만삭의 임신부에 요구되는 특정 이미지가 있다는 것이 명확히 드러난 셈입니다.

보그 한국판 2022년 6월호에 실린 이하늬의 만삭화보. 보그 제공

연예인이 아닌 보통 엄마들도 임신 30주가 넘어 만삭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원피스나 드레스를 입고 배를 어루만지며 살며시 미소짓거나, 태어날 아기에게 줄 신발을 들고 밝게 웃는 사진입니다. 섹시함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임신한 여성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집 밖을 돌아다니는 것조차 이상하게 쳐다보던 때와 달리, 당당하게 축하받는 분위기가 자리잡은 것만도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임신부에 대한 고정관념은 비단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91년 만삭화보의 원조 데미 무어를 필두로 서구권에서는 만삭의 유명인이 화보에 등장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됐습니다. 신디 크로포드, 머라이어 캐리, 브리트니 스피어스, 니콜 키드먼, 테니스선수 세레나 윌리엄스까지 셀 수도 없죠. 스타들의 만삭화보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전라 혹은 반라로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있거나, 원피스 혹은 드레스를 입고 D라인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래도 분위기는 모두 같습니다. 신비롭거나 우아하거나. 30년간 그랬습니다.

1991년 8월 베니티 페어 표지에 등장한 만삭의 데미 무어. 이 화보는 스타 만삭 사진의 원조로 유명하다. 애니레보비츠 촬영

이러한 불문율을 팝가수 리한나가 최근 깨뜨렸습니다. 지난달 공개된 리한나의 만삭화보는 그간의 화보와 비교하면 파격 그 자체입니다. 그는 붉은색 전신 레이스 수트를 입고 표지를 장식했으며, 둥그런 배를 보석체인으로 휘감고 풍성한 퍼를 걸친 과감한 스타일을 선보였습니다.

 

임신 전에도 노출이 많은 의상과 강렬한 패션을 즐겼던 리한나는 임신 후 일상에서도 기존 스타일을 그대로 고수했지요. 리한나는 보그와 인터뷰에서 “패션은 내가 사랑하는 것 중 하나”라며 “임신부에게 전통적으로 요구되는 모습들을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패션잡지 보그 2022년 5월호 표지의 리한나. 애니레보비츠 촬영

이번 이하늬의 만삭화보 역시 콘셉트와 메시지에서 리한나와 결이 같습니다. 이하늬는 “신비로운 여성의 몸을 보여주는 동시에 새로운 방식을 원했다”면서 “어떤 역할에 대한 고정적인 시선을 거두는 것부터 시작했다. 임신부도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있고, 스스로 섹시하다고 여길 수 있는 것처럼”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역할에 대한 고정적인 시선을 거두는 것’이란 말에 이번 화보 프로젝트의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이번 화보는 세상 모든 엄마들, 나아가 역할에 따른 고정관념을 강요받는 이들에 대한 응원입니다.


한 누리꾼은 이하늬 화보 기사에 “엄마로서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엄마가 헌신과 희생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이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나중에 반성하게 될 것”이란 댓글을 남겼습니다. 자기 개성 드러내는 화보를 찍을 시간에 자신을 버리고 희생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조언 같습니다.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육아에 지쳐 우울해하는 부모들에게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내리는 처방이 ‘자신을 돌보라’는 것 아니던가요. 24시간 아이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자신의 정체성, 삶의 목표 등을 지켜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엄마의 자아 역시 중요하며, 그를 위한 주변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줄 알았는데, 아직 아니었나봅니다. 임신부와 엄마에 대한 고정적 이미지가 강요되는 사회, 언제쯤 달라질까요.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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