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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체 학살 80주년 맞은 체코 총리 "러, 나치와 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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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6-12 15:20:00 수정 : 2022-06-12 15: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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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나치 독일, 체코 리디체에서 민간인 살해
"오늘날 우크라에서 러시아가 벌이는 짓과 유사"
오는 7월 EU 의장국이 되는 체코의 페트르 피알라 총리(왼쪽)가 지난 8일(현지시간) EU 회원국들 의견을 수렴하는 차원에서 이탈리아를 찾아 로마 공항에 막 내린 모습. 피알라 총리 SNS 캡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체코에서 저지른 ‘리디체(Lidice) 학살’이 80주년을 맞은 가운데 피해국인 체코 총리가 이 사건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비교했다. 앞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탈(脫)나치화’를 침략 명분으로 내세웠는데 정작 나치와 비슷한 쪽은 러시아라는 신랄한 아유가 담긴 것이어서 주목된다.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는 11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일요일인 12일 열리는 리디체 학살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리디체는 체코 역사의 위대한 기념물이며 전 세계가 그것에 대해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리디체는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체코는 2차대전 발발 전인 1939년 초 히틀러의 강압에 굴복해 나치 독일에 주권을 양도했고 1945년 5월까지 독일군의 점령 통치를 받았다. 다만 국민 중에서 나치에 반대하는 이들은 프랑스 레지스탕스처럼 조직적인 저항운동을 펼쳤다. 영국은 체코 저항군을 적극 지원했으며 일부를 영국으로 데려가 직접 특수작전을 가르치기도 했다.

 

1942년 5월 27일 히틀러의 핵심 측근이자 나치 실세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프라하 교외 고속도로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영국에서 훈련받은 체코 저항군의 폭탄 공격에 크게 다쳐 1주일 뒤 사망했다. 당시 하이드리히는 체코를 다스리는 보헤미아·모라비아 보호령 총독 대리였는데 체코 주민들을 어찌나 혹독하게 탄압했던지 ‘프라하의 도살자’로 불렸다.

 

히틀러는 보복을 지시했다. 폭탄 공격 현장에서 가까운 리디체 마을 주민들이 저항군의 배후로 지목됐다. 1942년 6월 9일 리디체 마을에 들이닥친 나치 대원들은 주민 중 남성 173명을 집단학살했다. 여성 50여명과 어린이 80여명은 강제수용소 등으로 끌려가 역시 처형되거나 영영 실종됐다.

체코 리디체 마을에 세워진 추모의 청동상. 1942년 나치 독일의 리디체 학살 당시 희생된 어린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만들었다. 리디체 학살 추모관 홈페이지

피알라 총리는 리디체 학살의 개요를 간단히 설명한 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는 “특히 오늘날 러시아 제국주의가 우크라이나를 파괴하고 국민을 죽일 때 이와 유사한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마을 부차를 점령하고 있는 동안 리디체 학살과 비슷한 민간인 집단살해가 저질러졌음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침략자 러시아를 나치 독일에, 그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를 체코 저항군에 각각 비유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간 러시아는 이번 전쟁을 “우크라이나를 나치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선전해왔는데 정작 나치와 닮은 쪽은 러시아라는 신랄한 야유가 담겨 있다.

 

체코는 2022년도 하반기 유럽연합(EU) 의장국이다. 현 의장국인 프랑스로부터 오는 7월 1일 의장국 지위를 넘겨받을 예정이다. 이를 의식한 듯 피알라 총리는 지난 한 주 동안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바티칸시티 4개국을 방문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과 정상회담을 하고 또 자국을 찾은 헝가리 대통령 등과도 만나 EU의 진로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바티칸에선 최근 건강 악화에 따른 퇴위설이 나도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결혼 30주년 축복을 받기도 했다. 피알라 총리는 EU 차기 의장국으로서의 과제에 관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부터 일부 회원국에서 확산하는 위험한 포퓰리즘까지 우리는 함께 맞서야 하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무거운 심경을 내비쳤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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