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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물리학자가 된 빈민가 흑인소년의 여정

입력 : 2022-06-18 01:00:00 수정 : 2022-06-17 18: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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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교수·나사 출신 올루세이
범죄소굴서 과학에 끝없는 열정
각고 끝 밤하늘서 빛나는 별 찾아
성장기라기보다 고백록 가까워
“관측한 것 중 무한 가까운건 희망”
수많은 가능성이 복잡하게 얽힌 다중 우주들을 가로지르며 마침내 꿈을 이루어낸 흑인 천체물리학자의 여정을 담은 ‘퀀텀 라이프’의 주인공 하킴 올루세이가 미국 항공우주국의 ‘Earth day 2017’에서 강연하고 있다. 하킴 올루세이는 플로리다 공대, 매사추세츠 공대(MIT),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를 거쳐, 현재 미국 조지메이슨대 물리학 및 천문학과 초빙교수, 미국 흑인물리학자학회(NSBP)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자료 NASA

퀀텀 라이프/하킴 올루세이, 조슈아 호위츠 지음/지웅배 옮김/까치/1만8000원

 

“나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에서 자라서 엘리트 천체물리학자가 될 운명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나의 인생은 어느 방향으로도 펼쳐질 수 있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나의 운명은 오른쪽 또는 왼쪽 어디로든 흘러갈 수 있었다.”

하킴 올루세이. 폭력과 범죄가 만연하던 빈민가에서 자란 흑인 천체물리학자다. 위험하고 불안한 빈민가에서 태어났지만, 과학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그를 돕는 이들 덕분에 결국 어두운 밤하늘에서도 밝게 빛나는 별을 찾아 나아갈 수 있었던 자신의 인생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얼마나 솔직하냐면 젊은 시절 뜨거웠던 사랑 이야기도 ‘19금’급으로 털어놓을 정도다. 성장기라기보다는 고해성사 수준의 고백록에 가깝다.

우리로서는 실태를 상상하기 힘든 미국 빈민촌 이야기가 실감난다. 어린시절 동네 불량배에게 뺏긴 새 자전거를 되찾기 위해선 더 못된 불량배였던 사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사촌과 함께 쳐들어간 불량배 집은 역시 빈민이었던 자신의 집보다 더 처참했다. 이때 일을 떠올리며 빈민가에서 벗어난 이 흑인은 ‘양동이 속 게’ 이야기를 꺼낸다. “뉴올리언스에는 유명한 속담이 하나 있다. 양동이에 들어 있는 여러 마리의 게 중에 한 마리가 바깥으로 기어나가려고 하면, 다른 게들이 꽉 붙잡아서 양동이 안으로 끌어당긴다고. 인간 사회도 양동이 속 게들과 똑같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혼자 조금만 더 잘 나가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 꼴을 그대로 두지 않고 다시 시궁창으로 끌어당긴다.”(47쪽)

마치 양동이 속 게처럼 올루세이는 이후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다 주저앉는 일을 반복한다. 지긋지긋한 가난도 그의 삶을 밑바닥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가족들은 먹고살기 위해 마약을 제조하고 판매했고, 그 역시 마약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매주 금요일 아침 나는 학교에서 대마초 담배 한 개비에 1달러씩을 받고 열 개비 정도를 팔았다.”

하킴 올루세이, 조슈아 호위츠 지음/지웅배 옮김/까치/1만8000원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과학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애정이 있었다. 주변에 읽을 만한 것이 있으면 닥치는 대로 읽는 책벌레였다. 지식에 대한 갈증으로 22권에 달하는 백과사전을 첫 항목부터 마지막 항목까지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읽었다고 한다. 특히 그를 매료시켰던 것은 백과사전을 읽다가 알게 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었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세상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몸은 끔찍한 아파트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마음은 거리를 돌아다니는 갱스터들과 엄마의 슬픔과 분노, 그리고 나만의 외로움으로부터 백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던 방법을 상대성 이론이 설명할 수 있을지 너무나 궁금했다.“(103쪽)

그래서 소년은 어두운 밤 위험을 무릅쓰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상대성 이론을 직접 실험했고, 고등학생 때에는 상대성 이론을 시연하는 컴퓨터 게임을 홀로 제작해 과학전람회에서 대상을 타기도 했다.

인재를 찾아 키우는 미군 정책은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빈민가 흑인 소년에게 좋은 기회를 줬다. 해군 모집관은 최고 3만달러까지 연봉으로 받을 수 있는 핵 엔지니어로 군에서 복무할 것을 권한다. 관련 대학 교육까지 받을 수 있었기에 바로 입대를 결정했다. “내가 해군에서 얻은 가장 좋은 것은 바로 격려였다. 게이지 상사는 내가 신병 훈련소에 입소하기도 전부터 나를 격려하고 응원했다…자신감을 채워주는 것은 나에게는 마치 로켓의 연료를 채우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해군 핵 엔지니어로 장교복을 입고 오하이오급 핵 잠수함에 탈 줄 알았던 올루세이의 꿈은 해상 근무가 불가능한 아토피 피부염 때문에 얼마 안 가 ‘명예제대’로 끝난다. 훈련소에서 돌아간 집은 연락도 없이 다른 곳으로 식구들이 이사간 상태였다. 이처럼 어려운 삶속에서도 어찌어찌 흑인대학 투갈루에서 학업을 이어간 올루세이는 과학에 대한 애정과 집념으로 스탠퍼드 대학원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어쩔 수 없는 학업 능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도서관에서 늘 밤을 새우는 노력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태양물리학자이자 흑인인 아서 워커의 연구진에 합류했다. 그럼에도 팰로앨토 동부의 뒷골목에서 마약을 찾아 헤매는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을 한동안 했다. 결국 그러다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미는 갱스터 위협으로부터 겨우 살아남은 후에야, 항상 자신을 믿어주며 곁을 묵묵히 지켜주었던 소중한 사람들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20세기 말 미국에 여전히 남아 있던 차디찬 인종차별의 장벽, 한 가족의 지독한 가난, 그리고 마약 중독의 아찔함과 개인적인 절망을 극복하고 천체물리학자가 되기까지 올루세이의 여정은 아슬아슬하며 감동적이다. 1933년 시작된 미국의 서평 전문 ‘커커스 리뷰’는 이 책을 ‘2021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고 그만큼 재미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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