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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25일 오전 4시 북한은 ‘폭풍’이라는 암호명 아래 38선 인근에 배치한 전군에 남침 명령을 내렸고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이어 유엔군과 중국군이 참전해 1953년 7월27일 휴전이 성립하기까지 3년1개월여간 한반도 전역이 초토화됐다. 이 전쟁을 흔히 ‘6·25’라고 부른다. 전쟁 발발일을 전쟁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예전에는 6·25사변(事變) 또는 6·25동란(動亂)이라고 했다. 사변은 ‘사람의 힘으로는 피할 수 없는 천재(天災)나 그 밖의 큰 사건’을 의미하며, 동란은 ‘폭동·반란·전쟁 따위가 일어나 사회가 질서를 잃고 소란해지는 일’을 뜻한다.

학계에서는 ‘한국전쟁’과 ‘6·25전쟁’이 병용되고 있다. 한국전쟁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the Korean War’를 번역한 말이다. 이에 대해 한국이란 명칭은 남한만을 지칭하는 통상적인 의미와 어긋난다는 이유 등을 들어 6·25전쟁이 보다 중립적인 명칭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오늘이 제72주년 6·25전쟁일이다. 6·25전쟁을 기억하기 위한 법정기념일이다. ‘지켜낸 자유, 지켜갈 평화’를 주제로 한 기념식과 각종 행사가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열린다. 6·25전쟁을 기억하기 위한 행사는 전쟁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51년부터 시작됐고, 휴전협정 체결 이듬해인 1954년부터 ‘6·25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1957년에는 명칭이 ‘6·25사변’으로 통일됐다. 1973년 정부의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6·25사변일’이 법정기념일로 제정됐다가 2014년 규정이 개정돼 ‘6·25전쟁일’로 바뀌었다.

민족적 참화를 겪고도 고도성장을 이뤄냈지만 전쟁의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정치학자 라종일은 평론집 ‘사람과 정치’에서 “우리 민족이 일찍이 겪은 어떤 경험보다 더 큰 재난이었지만 동시에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사의 큰 흐름과 직접 부딪히는 계기이기도 했다”면서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과 바로 연관된 것들이며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의 실마리들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가 6·25전쟁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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