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에게 삶은 게임…태평스럽게 법 어기는 문화 만들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불명예 퇴진한 것은 그를 권력의 정점에 서게 했던 ‘거짓말 정치’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과 CNN이 7일(현지시간) 진단했다.
가디언은 “존슨 총리의 거짓말과 규칙을 뻔뻔하게 무시하는 태도는 그가 권력을 거머쥔 원인이 됐지만, 한편으로는 추락 이유가 되기도 했다”며 “그의 거짓말이 처음에는 개인에게만 피해를 줬으나, 나중에는 정당·정부에까지 해를 가했다”고 짚었다. 이어 “그는 총리로서 규칙과 법을 어겼고, 태평스럽게 법을 위반하는 문화를 만들어냈다”고 덧붙였다.
존슨 총리는 대표직 사임 발표 직전에도 거짓말로 곤욕을 치렀다. 크리스토퍼 핀처 보수당 하원의원이 지난달 30일 성 추문으로 원내부총무 자리에서 물러나자 존슨 총리가 핀처 의원이 3년 전 외무부 부장관 시절 성 비위를 저질렀음을 알고도 부총무 임명을 강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총리실은 2019년에는 핀처 의원의 성 비위 혐의를 알지 못했다고 발뺌했으나, 존슨 총리가 과거에 관련 사안을 보고받았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궁지에 몰렸다. 그는 2019년 조처를 하지 않은 것은 나쁜 실수이지만,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고 변명했다.
존슨 총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봉쇄조치가 내려졌을 당시 여러 차례 방역 조치를 어기고 파티를 벌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이어갔다. 그는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받자 파티가 아닌 업무상 모임으로 생각했고, 규정 위반이라는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식으로 반박하려 했으나 오히려 많은 사람의 공분만 샀다.
존슨 총리는 정계에 입문하기 전 일간지 기자로 일했는데, 그때도 거짓말을 거듭한 이력이 있다고 CNN은 전했다. 그는 더타임스 기자 시절 대부(代父)였던 역사학자 콜린 루카스의 코멘트를 날조했고, 일간 텔레그래프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EU 집행위원회가 입주한 벨기에 브뤼셀 건물이 철거될 것이라는 오보를 냈다.
CNN은 존슨 총리가 비싼 명문 기숙학교인 이튼을 다니면서 과도한 자신감을 얻었고, 학력과 경력을 쌓는 과정에서 성공을 위해 진실보다는 거짓을 말하는 쪽을 선택했다고 짚었다. CNN은 “존슨 총리에게 삶, 관계, 이력 등 모든 것은 게임이었다”며 “그는 많은 여성을 기만했고, 심지어 자신의 아이와 관련된 사안마저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존슨 총리의 거짓말이 포퓰리즘과 맞물려 상당한 효과를 냈고, 다른 정치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가디언은 “존슨 총리의 습관적 거짓말은 광범위한 정치 프로젝트에 뿌리내렸다”며 “과학이나 데이터를 무시하기도 하는 탈진실(Post-truth)은 새로운 포퓰리즘의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CNN도 “존슨 총리의 거짓말은 전염성이 있었다”며 “일부 장관들은 지난 몇 달 간 서서히 그가 한 거짓말을 반복해 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존슨을 총리로 만든 보수당이 그가 정직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진실을 말할 것 같은 사람 대신 ‘거짓말쟁이’를 택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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