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3회만에 4.0%로 시청률 정상에
넷플릭스 한국 1위… 日·比 등서 톱10
여타 법정 장르물의 무거운 플롯 대신
밝으면서 진중한 에피소드 시청자 감동
과하지 않은 연기로 세상 부조리 짚어
제작총괄 맡은 에이스토리 이영화 PD
“박은빈 캐스팅 위해 1년여간 기다려
별난 우리 삶, 가치 있다 느껴주셨으면”

수목 안방극장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 중이다. 공중파 채널도, 종합편성채널도 아니다. 이름도 낯선 케이블채널에서 방송하는 드라마가 쟁쟁한 경쟁작들을 제치고 시청률 1위를 기록 중이다. 바로 ENA(전 SKY TV)에서 방영 중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포스터)다.
12일 시청률조사업체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방송 3회 만에 동시간대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지난 6일 방송된 3회는 전국 유료가구 기준 4.0%를 기록했다. 1회 0.9%로 시작, 2회 1.8%로 ENA 자체 최고 시청률을 달성했다. 이어 다음 날 방송된 4회에서도 5.2%로 1.2%포인트 상승하면서 왕좌를 지켰다. 글로벌 OTT 플랫폼 넷플릭스 한국 차트에서도 1위에 올랐다. 홍콩, 인도네시아, 일본,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스리랑카, 대만, 태국, 베트남 등에서 톱10 차트에 올랐다.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킨 셈이다.
드라마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변호사 이야기, 법정 장르물이다. 하지만 최근 유행하고 있는 장르물 양식을 따르지 않는다. SBS 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처럼 거대 법무법인 대표와 정치·경제계 권력자들이 흑막 뒤에서 암투하는 내용이 아니다. JTBC 수목드라마 ‘인사이더’처럼 어둡고 무거운 내용도 아니다.
법정을 다루는 장르물이지만, 밝고 가볍지만 진중하면서도 따뜻하다. 천재적인 암기력을 지닌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의 로펌 생존기다. 제작진은 단순한 법정물로 드라마를 만들지 않았다. 주인공이 지닌 장애를 부각해서 시청자로 하여금 약자에 대한 연민을 느끼도록 강요하지도 않는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고 있는 주인공 특성을 사려 깊게 보여주면서, 조금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주인공을 통해 세상의 편견, 부조리를 이야기한다.

‘낭만닥터 김사부’ ‘배가본드’ ‘자이언트’ 등에서 내공을 보여준 유인식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백상예술대상과 청룡영화상 등 유수 영화제를 휩쓴 ‘증인’으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이끈 문지원 작가가 집필을 맡았다.
‘우영우 신드롬’의 근원은 진정성이다. 매회 담백하면서도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쌓아 올린 에피소드는 시청자에게 감동과 생각할 거리를 준다. 특히 제작진은 우영우가 가진 ‘자폐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주변인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제작총괄을 맡은 에이스토리 이영화 PD는 세계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이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란 물음에서 드라마가 시작됐다”며 “주인공이 이런 특성을 가진 인물이다 보니 시청자들을 설득하고 공감하게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로 미국에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가 있다고는 하나, 실존 인물이 있는 것과 드라마 속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며 “그렇기 때문에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자료 조사가 선행돼야 했고 이 부분에서 전문가 자문을 받았다”고 제작 과정을 밝혔다. 특히 이 PD는 ‘우영우’란 캐릭터가 단순히 드라마 전개를 위한 특성을 가지고 기능적으로 극 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강조했다.

‘우영우 신드롬’의 주인공은 역시 주연 박은빈이다. 시선이 부자연스럽고 의사소통이 어려우며 소음 등에 예민하지만, 우영우의 그런 모습은 과하지 않다. 솔직하다 못해 오히려 엉뚱하기까지 한 우영우는 긴장하고 실수투성이인 20대 사회 초년생 같다. 앞서 제작발표회에서 박은빈은 “매체에서 구현된 (다른 자폐 스펙트럼) 캐릭터를 모방하고 싶지 않았다”며 “실존 인물이나 기존 캐릭터를 은연중에 기억해 접근하고,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까 조심스러웠다”고 밝혔다. 이어 “자폐 스펙트럼 진단 기준을 보면서 공부했다. 자문해 주는 교수님이 극본을 검수해 줬고, 모두가 자유롭게 연기하면서도 캐릭터에 진심을 담을 수 있는 적정선을 찾았다”며 캐릭터 연구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강조했다.
박은빈 연기 호평에 대해 제작진은 자폐 스펙트럼을 표현할 배우를 찾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고 캐스팅 과정을 설명했다. 심지어 박은빈을 위해 1년여를 기다렸다고 한다. 이 PD는 “박은빈 배우를 먼저 선택하고 기획한 것은 아니지만, 대본을 개발한 후 주인공인 ‘우영우’ 캐스팅을 고민할 때 이 역할은 ‘박은빈 배우’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2020년 12월 박은빈 배우 측에 대본을 전달했고, 그 당시 박은빈 배우가 먼저 제안받아 고민 중이던 드라마 ‘연모’가 있어서 촬영이 끝나기를 기다린 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촬영에 착수하게 됐다”고 말했다.
뛰어난 연출과 집필진, 제작사의 철저한 준비와 기다림, 그리고 배역에 딱 맞는 배우까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삼박자가 모두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굳게 자리한 한국 사회, 그리고 약자에 대한 보호가 필요한 지금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의 아낌없는 지지와 박수가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 제목에서는 그 이상한 사람을 ‘우영우’로 지칭하고 있지만, 사실상 ‘우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조금씩은 이상한 많은 사람이 이 드라마를 보고 우리의 삶이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다’고 느껴주셨으면 합니다.” (이영화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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