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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취소” vs “권한 침해”… 사법부 투톱 ‘힘겨루기’ 지속 [뉴스 인사이드]

입력 : 2022-08-06 13:35:42 수정 : 2022-08-07 09: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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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위헌’ 효력 논란

법조항 통째 없애는 ‘단순위헌’과 달리
‘법원 해석은 위헌’으로 보는 변형 결정

헌재 결정에 따라 당사자들 재심 청구
법원이 수용 안하면 강제할 방안 없어

법조계 ‘한정위헌 기속력’ 의견 갈리고
국회는 수수방관… “결국 국민만 피해”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21일 사상 세 번째로 대법원의 판결을 취소하라는 결정을 내놓으면서 ‘최고 법원’ 지위를 둘러싼 대법원과 헌재의 해묵은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헌재는 지금까지 모두 5건의 판결을 취소하라고 결정했지만, 대법원은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재판 결과 공표 후 법원이 그 재판을 임의로 철회하거나 변경할 수 없게 되는 구속력)을 부인한 채 관련 재판을 취소하지 않고 있다. 양 기관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명확한 결론을 받지 못한 재판 당사자만 피해를 입게 된 셈이다. 헌재는 2016년 이후 한정위헌 결정을 선고하지 않고 있어 대법원과 헌재가 다시 충돌할 가능성은 작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3주 만에 또다시 ‘재판취소’

 

헌재는 지난달 21일 GS칼텍스와 AK리테일, KSS해운이 대법원의 재심청구 기각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 3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취소 결정했다. 앞서 헌재는 1997년 처음으로 대법원 판결 취소 결정을 1건 선고한 뒤 지난 6월30일 25년 만에 두 번째 재판취소 결정을 냈다. 이어 3주 만에 또다시 재판취소 결정을 한 것으로, 헌재가 내린 대법원 재판취소 결정은 총 5건이 됐다.

 

재판취소 결정을 둘러싼 논란은 ‘한정위헌’ 결정의 효력을 두고 시작됐다. 한정위헌이란 헌재가 법 조항 전체에 대해 ‘위헌’이라고 선언하고 통째로 없애버리는 ‘단순위헌’ 결정과 달리, 법 조항은 그대로 둔 채 ‘법원이 ∼라고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고 보는 변형 결정이다. 대법원은 단순위헌 결정은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유효하지만 한정위헌 결정은 법적 근거가 없는 형식이고, 법률의 해석·적용에 관한 법원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인정할 수 없다고 본다. 반면 헌재는 한정위헌이 적법한 결정 형식이기 때문에 법원과 국가기관이 헌재의 법률 해석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판취소 사건은 모두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 따라 당사자들이 재심 청구를 했지만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문제가 됐다. 이번 사건과 관련, GS칼텍스는 2004년 707억원의 법인세 부과 처분이 법 개정으로 실효된 옛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23조에 따른 것이라며 부과세 처분 취소소송과 함께 헌법소원을 냈다. GS칼텍스는 부과세 처분 취소소송에서는 패소했지만 헌재는 부칙 23조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GS칼텍스는 이를 근거로 재심청구를 했지만 법원은 기각했고, 2013년 재심청구 기각 판결을 취소해 달라는 헌법소원 심판을 다시 청구했다. 그 결과 헌재가 재판취소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다만 헌재는 위헌결정 이전에 확정된 법원의 판결과 법원의 재판을 거쳐 확정된 행정처분인 과세처분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지 않아 부적법하다며 각하했다.

 

◆1997년 이후 25년 만에 갈등 격화

 

대법원은 25년 만에 다시 나온 재판취소 결정에 공개 반발했다. 두 번째 취소 결정이 나오자 대법원은 입장문을 내고 “한정위헌 결정은 법원을 기속할 수 없고 재심 사유가 될 수 없다”며 “대법원을 최종심으로 하는 심급제도를 사실상 무력화함으로써 국민이 대법원의 최종적인 판단을 받더라도 여전히 분쟁이 해결되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도 재판취소 결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21일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실에 “헌재가 법률의 해석지침을 제시하고, 법원이 이를 따르도록 요구한다면 헌법이 선언한 사법권의 독립, 대법원의 최고법원성을 모두 부인하는 것”이라며 “헌재는 제4의 국가기관일 뿐 최고법원이 아니며, 대법원과 헌재가 상호 독립적이고 동등한 지위에 있는 제도 아래서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권한행사를 통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1997년 첫 재판취소 사건 때도 대법원은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1995년 이길범 전 의원은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양도소득세를 물리는 건 부당하다며 과세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대법원이 이 사건을 심리하는 동안 헌재는 다른 사건에서 실거래가 기준으로 양도소득세를 부과한 것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전 의원 패소 판결을 확정했고 이 전 의원은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이를 받아들여 1997년 대법원이 내린 이 전 의원 패소 판결을 취소했다. 당시에도 양 기관의 입장이 계속해서 평행선을 달리자 결국 국세청은 이 전 의원에 대한 재산 압류를 해제하고 공시지가를 초과해 부과했던 세금도 취소했다. 이 전 의원도 헌재와 법원에 냈던 관련 헌법소원과 소송을 모두 취하하며 사건은 일단락됐다.

 

◆‘최고 사법기관’ 자존심 대결로… 국민 권익 뒷전에

 

‘재판취소’ 논란이 양 기관의 힘겨루기로 번지면서 법조계에서는 “결국 국민만 피해를 입게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헌재에서 재판취소 결정을 받았더라도 대법원이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현행법으로 이를 강제할 방안은 없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당사자는 양 기관을 오가며 핑퐁처럼 끝없이 소송을 반복해야 할 수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첫 재판취소 결정 때도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과세당국의 결단으로 당사자가 구제받을 수 있었다”며 “갈등의 불씨가 남아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해법은 마땅치가 않다. 한정위헌의 기속력을 인정해야 하는지를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릴 뿐만 아니라 입법적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국회도 수수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률 해석에 대한 부분은 사법부의 독립과도 연결되는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한정위헌의 기속력을 칼로 무 자르듯 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며 “최고 사법기관들의 대립을 중재할 만한 기관도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국회에서 입법적인 해결책을 내놓을 리 만무하다”고 했다. 헌재연구관 출신의 변호사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헌재에서도 한정위헌 결정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두 기관의 위상 다툼보다는 결국 국민의 기본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 해결 방안을 논의할 때”라고 했다.

 

실제로 재판취소로 인한 갈등을 의식한 듯 헌재는 2016년 이후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다만 최근 재판취소 결정으로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재의 사법통제 범위가 확대된 만큼 이 같은 경향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박미영 기자 my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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