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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칼럼] ‘생의 가을’에 생각하는 교황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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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9-04 23:20:34 수정 : 2022-09-04 23: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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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세대는 ‘청년들의 뿌리’
통제보다 성장 도울 때 아름다워
노인과 대화하라는 교황의 말씀
세대 갈등 겪는 우리 사회에 일침

환절기다.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기까지 하다. 옷장을 정리하며 또 이렇게 여름을 떠나보낸다. 가을이 성큼 오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영적 지도자 안젤름 그륀 신부는 ‘황혼의 미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가을에는 아름다운 것을 보고 즐기는 일이 중요하다. 업적을 쌓는 대신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인생의 가을은 한계를 부딪쳐보는 데서 온다. 어느새 여름 같았던 젊음이 가고, 소중했던 것들이 떠나간다. 열정이, 기억력이, 경제력이, 순발력이,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살며 공들여 쌓아왔던 업적들이 소리 소문 없이 ‘나’를 무시하고 떠난다. 때로는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겨 평생 ‘나’인 줄 알았던 몸까지 ‘나’를 떠날 수도 있음을 배우게 된다. 그런 한계에 부딪혀 이럴 수는 없다고 분노하며 내 것이라 믿었던 것, 그러나 지나간 것에 집착하여 ‘라떼’를 그리워하면 ‘그냥 존재’하는 힘을 경험할 수 없다. 차라리 놓아버려야 한다. 늘 열정적이어야 하고, 늘 잘나가야 하고, 늘 멋있어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강박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는 집단 강박증을 앓고 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놓아버림을 배우는 때가 인생의 가을이다. 늙음의 품위는 아직은 젊다고 과시하는 데서 생기지 않고, 관조의 힘을 배우며, 사그라지고 낮아지고 조용해지는 데서 생긴다. 그런 사람만이 그냥 존재할 수 있고, 젊은이들의 건강한 뿌리가 될 수 있다. “노인과 대화하세요. 그들은 여러분의 뿌리입니다.” 얼마 전 KBS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보낸 메시지다.

나이 든 세대는 젊은 세대의 뿌리다. 그런데 왜 우리 청년들은 나이 든 세대를 외면하고 그들과의 대화를 불편해할까. 뿌리에 상처가 있으면 가지가 건강해질 수는 없는데 어디서부터 돌봐야 할 것인가. 오죽하면 세대갈등이 우리 사회의 치명적인 문제가 됐을까.

MZ세대도 알고 있다. 그들도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단명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늙음은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Z세대가 나이 든 세대를 외면하는 것은 나이로 그들을 통제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 통제로부터의 거리두기가 ‘라떼’를 멀리하고 ‘꼰대’로 비하하는 것일 것이다.

교황의 말씀대로 기성세대는 청년세대의 뿌리다. 지붕이 아니다. 뿌리로서 그들을 받쳐주고 스스로 열매 맺게 해야지 지붕이 되어 성장을 통제하고 방해하면 안 된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 중에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이 있다. 탕자는 소위 ‘힘든 혹은 못된 아들’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도 전에 유산을 챙겨달라며 요구하는 철없는 아들이고, 그렇게 떼를 써서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가지고 나가 모두 탕진하고 돌아온 실패한 아들이다.

그런데 렘브란트의 상황 해석이 묘하다.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렘브란트 그림 속 ‘아버지’는 네 죄를 네가 아느냐, 하며 그간 아들의 일탈을 규명하려 들고 처벌하려 드는 형 집행자가 아니라 기진맥진한 아들을 아무 말도 없이 안아주는 따뜻한 아버지다.

그 아버지는 잘 나이 든 자의 표본이다. 왜 아버지가 아들의 일탈과 잘못을 모르겠는가. 그러나 삶에는 지름길이 없음을 알고 있는 아버지는 돌고 도느라 지치고 맥이 빠진 아들을 받아들이며 아들의 성장을 돕고 있는 건강한 뿌리다. 그런 아버지라면 언제든지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지 않겠는가.

충분히 살고 사랑했던 사람만이 그 시절을 흘려보낼 수 없는 것처럼 젊어서 스스로를 치열하게 펼쳐 보였던 사람만이 간섭하지 않고 충고하지 않고 통제하려 들지 않고 젊음을 축복해줄 수 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경험해야 하는 젊음의 실수와 실패를 질책하지 않고 바라보며 기다려줄 수 있다.

무릎 통증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도 조금도 위축됨이 없이 환하게 미소 지으며 진심으로 세상을 축복할 줄 아는 교황이 우리 청년들에게 권하는 말은 분명 나이 든 우리 세대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제발 살아가는 것을 겁내지 마십시오. 삶은 외롭게 갇혀 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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