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벗’의 긍정적 효과가 크다고 자평
조희연 “2025년까지 중·고생에 지급”
학부모들 “아이 종일 유튜브·웹툰 봐
대부분 가정에선 폐해가 몇배 더 커”
분실 우려·예산 낭비 등 문제 더해
교육청 “우려 관리하며 전진해야”
학부모들 “의견 안 듣겠다는 것”
“‘디벗’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아요.“
서울에 사는 학부모 A씨는 요즘 사춘기인 중1 아들과 자주 부딪힌다. 갈등의 원인 중 하나는 서울시교육청에서 나눠준 태블릿PC ‘디벗’이다. A씨의 아들은 집에서도 디벗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A씨는 “스마트기기 사용이 걱정돼 스마트폰은 관리 애플리케이션(앱)을 깔고 사용 시간을 통제하는데 디벗은 통제가 안 된다”며 “아이가 종일 디벗으로 유튜브나 웹툰 보느라 정신이 팔려있다. 디벗 가지고 잔소리 하다 보면 ‘저걸 왜 나눠줘서 이 사단을 만드나’란 생각만 든다”고 토로했다. 그는 “디벗이 디지털 교육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선 폐해가 몇배 더 크다고 본다. 진짜 애물단지”라고 덧붙였다. “다시 수거해가라고 서울시교육청 앞에 가서 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서울시교육청이 2025년까지 서울의 모든 중·고등학생에게 스마트기기를 보급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교육청에서 나눠 준 스마트기기 때문에 아이들 관리가 안 된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스마트기기 운영사업 담당 공무원에게 상을 주는 등 관련 정책을 교육청의 치적으로 적극 홍보하고 있지만, 정작 정책의 혜택을 받은 가정에선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발이 나오는 등 온도 차가 크다.
10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관내 모든 중1에게 스마트기기를 나눠주는 ‘디벗’ 사업을 추진했다. 디벗은 ‘디지털+벗’이란 뜻으로, 학생에게 태블릿PC 또는 노트북, 전자펜 등을 나눠줘 수업과 학습에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680억원을 들여 중1에게 7만2070대, 교사에게 1만7811대를 지급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디벗의 긍정적 효과가 크다고 자평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디벗 운영사업 담당 공무원을 ‘올해 상반기 서울교육 적극 행정 최우수상’에 선정했다.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4차 산업혁명과 교육의 디지털 전환을 위해 ‘학생 1인 1스마트기기’ 교수학습 환경 마련의 필요성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학생 간, 지역 간 스마트기기 보급 격차로 인한 학습 결손의 발생 우려 해소를 목표로 디벗 지원 확대를 위해 적극적인 교육 행정을 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내년엔 고1에게도 디벗을 지급하는 등 디벗 지원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달 31일 ‘3기 정책 방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2025년까지 모든 중·고생과 교원에게 디벗을 지급해 학생 개개인에 최적화된 맞춤형 교육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소요 예산은 3127억원이다.
이런 계획이 언론에 보도되자 학부모들이 많이 사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정책에 반대한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자신을 중1 학부모라고 밝힌 B씨는 “아이가 디벗으로 어떤 공부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거의 게임이나 유튜브 시청 용도로 쓴다”며 “학습에만 사용하게 학교에서 관리하거나 중독 안 되게 제대로 사용하게 하는 법을 알려줘야지 그냥 던져주고 끝이다. 이미 나눠준 것도 반납하고 싶은데 사업을 확대한다고 하니 황당하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아이가 디벗에 유튜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다 깔아놨다. 아이들끼리 걸리지 않는 앱을 까는 방법도 공유하는데 선생님과 교육청은 대응도 안 되니 답답하다”며 “부모가 잘 통제하면 된다고 하지만 중1 학부모가 아니면 (아이들 통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지금까지 핸드폰이나 노트북 등 통제를 잘했던 집에는 (디벗이) 거의 테러 수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밖에 “워킹맘이라 애가 집에 혼자 있는데 디벗으로 계속 유튜브를 본다. 스마트폰은 관리 앱으로 통제해왔는데 디벗은 통제 앱도 안 깔린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던져주고 알아서 자제하라고 하는 무책임한 행정에 화난다”, “방학 때는 온종일 집에서 디벗을 들고 있어서 학원도 늦은 적 있다”, “원래 스마트기기가 없어서 게임을 안 하던 아이인데 디벗에 게임을 다운 받아서 게임을 한다“ 등 디벗 때문에 아이들의 유튜브 시청, SNS 사용 등만 늘어난다는 불만글이 줄을 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은 디벗에 게임이나 유해 사이트 접속 등이 차단되는 프로그램이 깔려있다는 입장이지만, 실제로는 게임을 하는 아이들도 많다. 인터넷에는 디벗에 게임 프로그램을 까는 법 등이 버젓이 올라와 있는 상황이다.
예산이 아깝다는 의견도 많았다. 한 학부모는 “집에 컴퓨터도 있고 태블릿PC도 있어서 안 줘도 되는데 왜 나눠주는지 모르겠다. 가정에서 스마트기기를 마련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에 선별 지급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 같다”며 “아이가 학교 화장실이 낡아서 가기 싫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런 거 주지 말고 진짜 급한 곳부터 예산을 썼으면 좋겠다. 세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학부모는 “학교에서 노트북으로 나눠줬는데 아이가 매일 가지고 다니니 가방이 무겁다고 한다. 학교에서 관리해주면 좋겠는데 학교에선 분실 우려가 있으니 집에 가져가라고 한다”며 “학교에서 충전도 못 하게 해서 집에서 충전을 해가야 하는데 매일 들고 다니니 고장 나거나 잃어버리진 않을지 걱정된다”고 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 학부모는 디벗 사업 담당 공무원이 ‘적극 행정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올리고 “아들이 주말마다 디벗 보느라 방에서 나오지 않아 얼굴 보기도 힘든데 저분들은 상 받고 좋겠다”라며 비꼬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해당 글에는 “너무 불만인데 상을 받다니”, “학습의 벗이라니 헛웃음만 나온다” 등의 불만 댓글이 이어졌다. 현재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한 C씨는 “자유학기 중인 1학년에게 디벗을 보급하니 날개를 달아준 격“이라며 “디벗 못하게 하느라 수업 시작부터 5분 이상 실랑이한다. 정말 스트레스”라고 댓글을 달기도 했다. 그는 “집에 가져가서 노느라 정작 학교에는 안 가져오기도 하고, 다른 학년 애들이 ‘1학년은 디벗 가지고 다니는데 우리는 핸드폰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조른다”고 덧붙였다.
서울시교육청도 이런 불만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25일 조 교육감이 참여한 서울시교육청의 ‘비대면 대시민 소통 토론회’에서는 실제 디벗 관련 우려가 쏟아졌다. 학부모들이 “디벗을 마냥 찬성하기 어렵다. 추진 한 학기가 지났는데 어떻게 보완할 거냐”, “유해사이트 차단을 뚫는 방안을 아이들이 단톡방에서 공유한다” 등 디벗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전달하자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1∼2주 전 디벗 담당 교원들에게 애로사항과 개선의견을 받았다. 학생·학부모 대상 의견 조사는 디벗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인 10월 정도에 실시할 예정”이라며 “12월 완료될 정책연구 2건을 통해 정책적 결함과 보완 지점도 파악하고 있다”고 답했다. 현장 반응 등을 검토해 개선점을 찾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 의견을 살피겠다고 한지 불과 일주일도 안 돼 조 교육감은 “디벗을 모든 중·고등학생에게 보급한다“고 밝혔다. 조 교육감은 학부모들의 우려가 나온다는 지적에도 “학부모들도 디지털 전환 시대에 ‘에듀테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그 바탕에 우려가 있는 것이고, 이런 우려를 관리하며 전진해야한다“며 정책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한 학부모는 “학부모 의견도 받고 정책연구도 해 개선점을 찾겠다더니 대뜸 전면 확대를 발표한 건 결국 현장 의견은 안 듣겠다는 것 아니냐”며 황당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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