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도 넘지 말라” 검찰·사법부 압박
정쟁에 앞서 철저한 진실규명 시급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당시 문재인정부의 외교안보사령탑이었던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그제 검찰에 구속됐다. 서 전 실장은 고 이대준씨가 피살된 다음날 관계장관회의에서 이 사건을 ‘월북’으로 단정 짓고, 당시 서욱 국방부 장관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에게 ‘보안을 유지하라’는 지침을 내린 데 이어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밈스)에 공유된 대북감청정보(SI)를 삭제하라고 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20년 9월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문 정부 때의 청와대 고위인사가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윗선’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서 전 실장의 혐의는 지난 10월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대부분 드러났다. 검찰은 서 전 실장 영장에 문 전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시하지 않았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대한민국에서 청와대 참모들이 독자적으로 ‘월북몰이’를 기획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실 은폐와 문건 파기, 월북 단정이란 일련의 과정에 문 전 대통령이 관련됐을 가능성은 작지 않다. 문 전 대통령은 이씨 피살 3시간 전쯤 표류 사실을 서면으로 보고받았고, 이후 이씨가 사살된 사실도 1시간 만에 청와대에 보고됐다고 한다. 그런데도 당시 문 전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 무슨 지시를 했는지는 밝혀진 것이 없다.
이런 마당에 서 전 실장의 영장실질심사에 앞서 문 전 대통령이 입장문을 잇달아 낸 것은 부적절하다. 문 전 대통령은 “달라진 사실이 없는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부처 판단이 번복됐다. 도를 넘지 말라”며 검찰과 사법부에 압박을 가했다. 어제는 “(서훈 같은) 대북 자산을 꺾어 버리다니 안타깝다”고 재차 엄호에 나섰다. 수사를 하지 말라는 얘기 아닌가. 유족들에게 사과 한마디 없다가 수사가 자신의 턱밑으로 다가오자 ‘월북몰이’가 정당하다고 강변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문 정부 청와대 회의 직후 해경청장은 이씨가 입은 구명조끼가 국내 해경용이 아니라 중국 한자가 적힌 조끼라는 사실을 보고받고도 “나는 안 본 것으로 하겠다”고 했다. 배에 남은 슬리퍼를 이씨 것인 양 발표하고 도박자금 때문에 월북했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증거조작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과 남북이벤트를 되살리려 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문 전 대통령은 이제라도 유족들의 물음에 성실하게 답하고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검찰은 정치권의 압력에 휘둘리지 말고 성역 없이 진실을 철저하게 규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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