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고성군 독수리 생태체험관
겨울이면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상공을 비행하는 독수리의 모습을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멋진 독수리 수백 마리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우리나라 최대 독수리 월동지인 경남 고성군 독수리 생태 체험관이다. 이곳은 일주일에 서너 번 야생 독수리들이 찾아와 먹이를 먹는 독수리 식당이기도 하다.
독수리를 만나기 위해 독수리 생태 체험관 ‘날아라 고성 독수리’를 찾아갔다. 독수리 탐조와 기념품 만들기, 생태놀이를 할 수 있어 겨울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한 무리의 독수리가 나타나 하늘에서 주변을 맴돌기만 할 뿐, 끝내 먹이가 있는 곳으로 내려앉지 않았다. 구성태 자연환경해설사는 “독수리들이 안개가 낀 날에는 내려앉지 않는다. 특히 오늘은 기온이 높고 바람이 불지 않아 독수리들이 움직이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독수리는 날갯짓을 많이 하지 않고 상승기류를 타고 날아다닌다. 비가 오거나 따뜻한 날에는 먹이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독수리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매년 11월이면 수많은 독수리 떼가 몽골에서부터 3000km를 날아와 고성에서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3월 다시 몽골로 돌아간다. 고성에서 볼 수 있는 독수리는 살아있는 짐승이나 가축을 사냥하는 ‘독수리’(eagle)가 아닌 동물 사체를 먹는 ‘독수리’(vulture)다. 가축이 죽으면 오염된 사체에서 발생하는 각종 병균은 사람에게 위협이 된다. 독수리는 전염병을 막아주는 생태계 청소부 역할을 한다. ‘독수리 할아버지’로 불리는 한국조류협회 고성군지회 김덕성(72) 지회장은 1997년 농약으로 오염된 곡식으로 죽은 오리를 먹고 2차 중독으로 독수리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먹이를 주며 살뜰히 보살피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먹이 주기 활동을 25년째 이어가고 있다. 관련 단체와 함께 다치거나 탈진한 독수리를 구조하고 치료하는 것은 물론 일부 독수리에게 윙태그(Wing-Tag, 인식표)를 달아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연구 활동도 하고 있다.
아쉬운 마음에 독수리 생태 체험관을 다시 찾았다. 비가 와서 독수리들은 먹이활동을 하지 못해 굶주린 상태였다. 독수리 먹이로 줄 비계가 섞인 돼지고기와 소 부산물 300kg을 들판에 뿌려놓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새까만 독수리 떼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지만, 경계심이 강한 독수리들이 좀처럼 내려앉지 않았다. 마침내 우두머리 독수리가 먹이 근처로 다가왔다. 그러자 안심한 주변의 다른 독수리들이 서서히 모여들어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텃새인 큰부리까마귀들도 이에 질세라 독수리들 틈에서 먹이를 쪼아 먹었다. 이날 독수리 식당을 찾은 독수리는 350여 마리다. 대부분 1~3살 된 개체들이다. 월동을 위해 우리나라를 찾는 독수리는 2000여 마리인데, 대개 먹이 경쟁에서 밀린 어린 독수리들이 몽골에서 DMZ 인근 지역을 지나 고성까지 내려온다. 1990년대 고성을 찾은 독수리 수가 100마리 남짓이었다. 현재 개체수가 500~600마리로 늘었다. 일정한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먹이를 주다 보니 안정적인 먹이터로 학습된 것이 이유라고 말한다. 한 지역에 많은 수의 독수리가 몰리면 먹이를 못 먹어 탈진하는 독수리가 생길 우려가 있어 김해 화포, 우포, 산청, 거제에 독수리 식당 분점을 냈다. “독수리를 보기 위해 회사에 휴가를 쓰고 왔다”는 노푸름(28)씨는 독수리를 보며 감탄사를 쏟아냈다.
김 지회장은 “세계적으로 2만 마리가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진 멸종위기종 독수리의 서식지가 사막화와 개발화로 사라지고 있다. 새끼 독수리가 3살까지 자연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20%에 불과하다. 이들에게 좋은 먹이를 공급해 생존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생태계를 지키는 일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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