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국민, 지속적 설득해야
과거사 등 日 전향적 조치에 달려
한·일 양국 최대 현안인 일제 강제동원 배상 문제가 ‘제3자 변제’ 방식으로 결론났다. 피고 기업인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의 참여 없이 우리 정부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2018년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따라 피해자 15명에게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피고기업은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을 위해 추진하는 ‘미래청년기금’ 사업에만 참여하기로 했다. 일종의 ‘간접 배상’ 방식에 동참키로 한 것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어제 “대한민국의 대승적 결단으로서, 우리 주도의 해결책”이라고 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참의원에 출석해 “역사 인식에 관해서는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해 왔고,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식민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담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등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누가 주도했건 역대 최악이었던 한·일 관계가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맞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조치는 미래와 국익을 고려한 정부의 고육책이다. 양국 관계를 이대로 두는 것은 모두에게 손해라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했다. 북핵 위협과 미·중 패권 경쟁 등으로부터 불안을 털어내려면 양국 협력 관계는 필수다. 당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늘 한국과 일본의 발표는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 간의 협력과 파트너십에 신기원적인 새 장을 장식했다”고 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한·미·일 3국이 예측 불가능한 국제 정세에 대응해야 하는데, 지금의 한·일 관계로는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없다.
일본 정부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때 해결된 문제라는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은 점도 고려됐다. 일본은 국제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인데 그럴 경우일본이 유리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피고 기업들이 배상금 출연에 참여하지 않아 ‘반쪽 해법’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당장 피해자들은 수용을 거부하고 있고 야당은 ‘제2의 경술국치’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는 우리의 현실적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이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 과거사를 잊자는 얘기가 아니라 이제는 미래와 국익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우리 정부가 국내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손을 내민 만큼 이제 일본이 전향적 조치로 호응해야 한다. 강제동원 문제가 양국의 국민적 공감대만 얻는다면 한·일 관계는 급속히 진전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한국 수출 규제 조치 해제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정상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 이달 중·하순경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으로 건너가 기시다 총리와 갖는 정상회담을 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일 관계 악화 이유가 과거사였던 만큼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발전하겠다고 한다면 사도광산, 위안부, 독도 등의 문제에 대해서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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