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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있었을까. 아니, 누가 만들어 놓았을까. 나뭇가지 위에 올라앉은 작은 나무집 하나가 환한 햇빛 속에서 앙증맞게 도드라져 보였다. 박공지붕에 아래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그 작은 집은 정면 중앙에 동그란 문이 나 있었다. 새집이었다. 정말,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을까. 그 집은 동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산자락 끝에 위치한 탓에 동네에는 유난히 새들이 많았다. 까치, 산비둘기, 또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이 저마다의 소리로 제 존재를 알렸다. 언젠가 한 번은 9층 높이의 베란다 난간에 날개를 접고 쉬고 있는 까치와 눈이 마주친 적도 있었다. 대담하게도 까치는 내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면서 날아가지 않았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새라니. 나와 눈이 마주친 까치만이 아니었다. 동네의 새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학습된 결과일 텐데, 새들은 사람들이 오가는 통행로에 내려앉아 먹이를 찾거나 깡충거리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 새들을 위해 누군가 수고와 정성을 아끼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귀가 살짝 어긋나고 톱질이 서툰 것이 더 정감이 가고 애틋했다. 새들은 과연 저 집에 들었을까, 저곳에서 새끼도 치고 혹독한 겨울을 났을까, 나는 궁금했다. ‘영끌’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사람들은 집 장만에 어려움을 겪는데 새들은 행복하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저 집에 파랑새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아니, 윤기 나는 깃털을 지닌 파랑새가 살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틸틸과 미틸이 찾아 헤매던 그 파랑새. 행복을 찾는 병에 걸린 딸을 위해 요술할머니는 남매를 찾아와 파랑새를 찾아달라고 부탁했고, 틸틸과 미틸은 그 파랑새를 찾아 모험을 떠난다는 내용의 동화는 우리에게 한 가지 메시지를 안겨준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 주변에 있다고. “세상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소박한 행복들이 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행복을 전혀 알아보지 못해요.” 동화 속 빛의 요정의 말이다.

따져보면 오늘 숨 쉬고 있는 것도 행복할 일이고, 봄이 오는 것도 행복할 일이고, 또 역병이 어지간히 잦아진 것도 행복할 일이다. 어디 그뿐일까. 커피 한 잔이 주는 행복도 있고, 가족이 무탈한 것도 행복할 일이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이 빚어낸다는 말로 일상의 지루한 모든 것들을 행복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행복하고, 또 행복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행복찾기의 비밀은 일체유심조에 있지 않을까. 모르긴 몰라도 저 새집을 만든 이도 행복했을 것이다. 톱질하고 못을 박고 또 나무에 올려놓는 동안 얼마나 행복했을까. 만든 이가 가졌을 그 행복의 뻐근함이 새집을 보는 내게로 그대로 전해진다. 기분 좋은 전염이다. 저 집에 든 새가 꼭 파랑새가 아니어도 좋다. 누군가 정성으로 만든 집에 새가 찾아와 주면 그걸로 족하지 않은가.

작가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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