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보 기관이 한국, 이스라엘, 영국, 프랑스 등 동맹국의 동향을 파악한 기밀 문서 유출 사건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엊그제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들은 미 정보 기관이 생산한 기밀 문서 100여건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출됐다고 보도했다. 미국 국방부 합동참모본부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문건에는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미군 무기 기밀 정보와 러시아의 작전 계획 등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첩보와 함께 동맹국 동향이 담긴 중앙정보국(CIA) 일일 보고 등이 다수 포함됐다. 이 중 최소 2건에는 미국 측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요청과 관련한 우리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들의 대화 내용이 담겨 있다. 민주 자유주의 국가들과 권위주의 국가들의 대립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동맹과 우호국들을 도청한 것이어서 아연할 수밖에 없다.
우리와 관련된 문건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최근 물러난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관련해 155㎜ 포탄 33만개를 폴란드에 우회해서 지원하는 방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포탄과 관련해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등의 대화 내용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이번 사태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졸속 이전 때문이라는 야당의 비판에 대해 “청와대보다 대통령실이 더 안전하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그렇더라도 이번 사건을 대통령실 내부 보안 점검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도청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3년 국가안보국(NSA)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미국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휴대전화를 2002년부터 10년 넘게 도청한 것에서부터 최소 30여개국 정상급 통화를 엿들은 것으로 알려지자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 정상들을 상대로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이번에 유출된 부분은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문서를 유출한 정확한 주체나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우방국들의 분열을 시도하기 위해 러시아가 문서를 조작해 유포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사건은 오는 26일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터졌다는 점에서 악재다. 불신이 쌓이게 되면 동맹에 파열음이 날 수밖에 없는 만큼 사실이 확인되면 미국에 엄중하게 항의하고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할 것이다. 정치적으로 과도하게 일을 키우려는 야당의 공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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