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의원 90여 명 야스쿠니 참배
반성 없는 日, 고립만 자초할 것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과 일본의 상반된 과거사 인식이 또다시 확인됐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봉기 80년 추모식에 참석해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역사적 책임에는 끝이 없다. 독일인들이 이곳에서 저질렀던 범죄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사죄했다. 게토 봉기는 1943년 4월19일 게토(유대인거주지역) 주민들이 독일의 강제수용소 이송에 저항해 무장봉기를 일으킨 사건이다. 당시 나치군의 무력 진압으로 유대인 6000여명을 포함해 1만3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유대인을 상징하는 수선화 모양의 ‘다윗의 별’ 장식을 가슴에 달고, 유대어를 섞어가며 추모사를 읽어내려갔다. 독일 국가원수가 이곳 추모 행사에서 직접 연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릇된 역사에 대한 사과의 진정성에 숙연함마저 느껴진다.
과거사 반성에서 독일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1970년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도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일본의 행보는 정반대다. 한두 차례 식민 지배를 사과했지만 뉘우침의 기색은 찾아보기 힘들다. 1990년 아키히토 일왕이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는 수사적 표현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자민당 출신의 역대 총리들은 ‘불행했던 과거’라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간 게 고작이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그제 지방신문 간부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이번에는 내가 (한국에) 가야 한다”고 했다. 한국 정부의 전향적 강제동원 해법으로 어렵게 마련된 관계 개선과 ‘셔틀 외교’ 복원에 호응하겠다는 것으로 비쳤다.
하지만 말뿐이다. 기시다 총리는 어제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에 내각총리대신이라는 직함을 버젓이 붙여 공물을 봉납했다. 과거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부도덕한 행위다. 불과 하루 전 “한·일 관계를 소중히 하고 싶다’는 그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초당파 의원 모임 소속 90여명은 아예 집단 신사참배에 나섰다. 우리 외교부는 기시다 총리의 공물 봉납에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일본은 같은 전범국인 독일이 유럽의 품격 높은 리더국가로 변모한 이유를 곱씹어봐야 한다.
독일은 1952년 이후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에게 총 800억달러를 지급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나치 전범들을 지금도 끝까지 추적해 법정에 세우고 있다. 일본은 언제까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책임과 배상이 해결됐다는 일방적 주장만 되풀이할 건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을 부인하고 독도를 일본 고유 영토로 명시한 내년도 초등학교 사회교과서 10여 종의 검정까지 승인한 건 과거사 반성은커녕 역사를 왜곡하겠다는 파렴치한 행위다. 오욕의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고 미화하려는 국가에는 미래가 없다. 고립과 국격하락만 자초할 뿐이다. 일본이 한·일 관계를 평화·번영의 동반자로 격상시키려면 과거사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순리다. “(독일은) 나치의 반인륜 범죄에 영원한 책임이 있다”는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말을 새겨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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