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4월부터 독감·감기에 연달아 걸려 한달간 약을 먹었어요. 항생제를 2주 이상 복용하고 있는데 괜찮을까요?”
최근 마스크 의무 착용 해제 이후 감기, 독감 등 환자가 늘면서 동네 소아청소년과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일명 ‘눈꼽 감기’로 불리는 아데노바이러스를 비롯해 리노바이러스, 독감, 코로나19 등 다양한 바이러스가 동시에 기승을 부린 탓이다.
아이들의 투약기간이 길어지면서 인터넷에서는 ‘항생제 논란’이 번졌다. “우리나라는 항생제 처방이 과하다. 무조건 빼라”라는 주장과 “항생제는 복용하다가 중단하는 게 최악의 선택이다. 무조건 끝까지 먹여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어떤 주장이 맞는 걸까.
감기, 독감 등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에는 기본적으로 항생제를 쓰지 않는다. 항생제는 중이염, 폐렴, 부비동염 등 세균성인 경우에 쓴다. 감기·독감 등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에도 항생제가 처방되는 경우는 2차적 세균 감염이 의심될 때다. 보통 일주일 정도면 좋아지는 감기가 시간이 지나도 더욱 악화하면 세균감염을 의심해서 항생제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감기 시작과 동시에 처방되는 항생제는 명백한 ‘과잉 처방’이다.
은병욱 노원을지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항생제와 관련한 문제는 과용하거나, 적게 복용하거나, 잘못 복용하거나 세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대부분은 과용과 잘못된 사용이 문제”라며 “코로나19 기간에 감기, 독감 등이 줄면서 항생제 사용이 잘 관리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최근 다양한 바이러스로 인해 또다시 과용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항생제는 과오용시 ‘내성’을 유발할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지난 2014년 영국에서 발표된 항생제 내성 보고서는 2050년까지 항생제 내성 문제가 지속되었을 때 전 세계적으로 100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내성을 유발하는 항생제 사용의 대표적인 예는 △잦은 복용 △오랜 복용 △복용 중 임의 중단 등이다. 잦고, 오랜 복용은 결국 절대적인 사용량이 많으면 안된다는 의미다. 세균이 퇴치되기 전에 ‘다 나은 것 같다’며 항생제를 끊는 ‘임의 중단’은 죽어가던 균이 다시 살아나 내성이 생길 수 있는 만큼 ‘금기’로 통한다. 그러나 이는 세균감염 치료시에 해당한다. 세균 감염이 아닌 바이러스 치료용이라면 애초에 ‘불필요하게’ 처방된 것이니 항생제를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중간에 끊는 것이 낫다. 중단으로 인한 부작용이 아니라 ‘과용’으로 인한 부작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인이 이를 구별하기는 어려우니, 전문가에게 현재 진단과 항생제 처방에 대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좋다.
은병욱 교수는 “일부 의원에서 바이러스성 감기에도 광범위한 균을 대상으로 한 3세대 세팔로스포린 항생제를 과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전쟁이 벌어졌다고 무차별적으로 대포를 쏴서 아군도 공격하는 ‘잘못된 사용’의 예”라며 “항생제는 몇가지 균만 ‘정밀 타격’하는 방식으로 필요한 기간에만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은 교수는 이어 “세균감염이 명확할 때 항생제를 적절하고 현명하게 쓰는 ‘항생제 사용관리 프로그램(Antimicrobial Stewardship Program)’에 대한 교육이 의료진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항생제 사용은 21.0 DID(인구1000명당 1일 하루 소비량)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4위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나마 2018년 29.8 DID, 2018년 26.1 DID에 비해서는 줄어든 편이다.
국내 의료기관의 항생제 처방에 대한 질적 평가(2019년)를 보면 전체 항생제 처방 중 26.1%가 부적절했다. 지난해 의사 대상 항생제 인식도 조사에서 의사의 40% 이상이 항생제가 불필요한 상황임에도 처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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