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소 직후 극단적 선택을 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옹호하는 다큐멘터리가 오는 7월 개봉을 목표로 제작 중이라고 한다. 제작 주체인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은 엊그제 영화 포스터를 공개하고, 어제까지 4000여명이 2억원의 후원금을 냈다고 밝혔다. 다큐멘터리는 2021년 오마이뉴스 기자가 박 전 시장의 측근인 ‘서울시청사람들’을 비롯한 50여명을 인터뷰해 쓴 책 ‘비극의 탄생’을 바탕으로 제작된다고 한다. 제목은 ‘첫 변론’으로, 포스터에는 “세상을 변호했던 사람, 하지만 그는 떠났고, 이제 남은 사람들이 그를 변호하려 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박 전 시장의 시정운영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라면 탓할 일이 못된다. 문제는 내용이다. 예고편에서 드러난 것만 봐도 심각한 수준이다. 당시 서울시장 비서실장은 피해자의 반복적 성폭력 피해 언급에 대해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피해자는 오히려 비서실에서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고 말한다. 오마이뉴스의 한 기자는 “박 전 시장이 사망하고 반론을 못하는 상황에서 성폭력이라고 마음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박 전 시장을 옹호하거나 당시 상황을 정반대로 얘기하고 있으니 2차 가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박 전 시장을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행태는 공분을 자아내게 한다. 영화홍보 유튜브 영상채널에는 박 전 시장이 영상촬영을 준비하던 중 피해자의 무릎에 ‘호’ 하며 입술을 댔다는 주장에 대해 “피해자가 먼저 시장님, 저 무릎 다쳤어요. 호 해주세요’라고 했다”는 반박 증언이 담겼다. 사건을 조사한 국가인권위 결정문엔 “당시 촬영을 준비했던 사람들은 기억을 못했다”고 기록돼 있는데도 불리한 부분은 빼고 근거가 부족한 증언을 영상에 넣어 편집한 것이다. 가해자의 명예만 중요할 뿐 피해자의 고통과 인권은 안중에 없는 몰염치한 행태다.
2020년 발생한 이 사건은 박 전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났다. 하지만 6개월간 조사한 국가인권위는 피해자 주장을 대부분 사실로 인정했고 심지어 박 전 시장의 아내가 인권위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낸 행정소송도 지난해 1심에서 패소했다. 이처럼 인권위와 법원이 피해자 손을 들어줄 만큼 가해·피해의 사실관계는 명확하다. 제작이야 추종자들 자유이겠지만 성폭력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다큐가 개봉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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