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합의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시찰단 방문을 두고 실무 논의 전부터 한·일 양국의 기싸움이 치열하다. 우리 정부는 후쿠시마 현지 오염수 정화 처리시설을 비롯한 방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꼼꼼히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인 반면, 일본 정부는 오염수에 대한 한국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작업일 뿐 오염수 검증 차원은 아니라며 견제에 나섰다. 예상했던 일이긴 하나 시찰단 파견에 앞서 합의가 결렬되는 일은 피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해양 오염 및 국민 건강·안전 침해 가능성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며 한·일 양국 공동검증을 촉구해 왔다. 하지만 일본은 외면했다. 일본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회원국이 아닌 개별 국가 등에 시찰을 허용한 것은 대만과 태평양 섬나라 18개국이 모인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이 고작이다. 이마저도 후쿠시마 현장을 방문해 담당자의 설명을 듣고 오염수 탱크와 다핵종제거설비(ALPS), 해저터널 등을 살펴보는 정도에 그쳤다. 별도의 자체 검증은 없었다. 우리 정부 시찰단이라고 해서 예외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
일본 정부와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은 오염수를 방류해도 한반도 해역에 도달할 때까지 4~5년이나 걸린다는 점을 들어 영향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국민 정서와는 거리가 있는 얘기다. 남해안 어민들은 수산업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오염수의 안전성 등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이 급선무다. 정부는 최고 전문가들로 시찰단을 구성하고 그들의 시찰 결과를 수용하고 공개해야 한다. 자칫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일본 측에 명분만 제공한다는 비판을 막는 길이다.
정상 간 합의 이후 일본 내부에서도 이번 시찰단 파견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일본 언론 상당수는 셔틀 외교의 일환이며, 이를 통해 오염수 방류에 대한 한국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평을 냈다. 일본 측의 성실한 대응이 양국의 벽을 허물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일본 정부가 시찰단 파견에 앞서 안전성 ‘평가’, ‘확인’ 등 표현 문제를 두고 딴지를 거는 듯한 모습은 이러한 양국 관계 개선 의지를 요식행위로 만드는 일이다. 실효적인 현지 조사가 가능하도록 성의 있는 자세로 협조해야 마땅하다. 오염수 처리에 대한 국제사회의 편견과 불신을 잠재우고 안전성과 정당성을 담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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