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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고립 대응 ‘골든타임’ 촉박… 컨트롤 타워 설치 시급 [2023 대한민국 孤 리포트]

, 2023 대한민국 孤 리포트 , 세계뉴스룸

입력 : 2023-05-17 06:00:00 수정 : 2023-05-17 16: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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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무엇을 할 것인가
(하) 우리의 대응

기존 정책 주로 노인 1인가구 집중 한계
중장년·청년 넘어 전국민 대상 확대 필요
고립가구 발굴·맞춤형 서비스 지원 담은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 발표 예정

실직·은퇴 뒤 사업 실패·이혼 등에 고립
연대감 주고 일상회복 지속 지원안 절실
중앙·지역 등 중구난방 정책 하나로 묶고
전문 인력 확보·전담부처 신설 요구 고조
안정적인 일자리 없이 간헐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던 A(55)씨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집 밖을 거의 나오지 않았다. A씨가 사회적으로 고립된 기간은 약 3년, 두문불출하던 A씨 집의 문을 두드린 건 지역 사회복지관 관계자들이었다. 이전에 식사 등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A씨를 인지했던 관계자들은 A씨를 고립사례로 보고 지원에 나섰다. 수차례 A씨를 방문해 사회적 연결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던 이들은 A씨가 물고기를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복지관은 A씨에게 물고기를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키우는 방법을 교육하는 ‘역할’을 맡겼고, A씨는 이후 1년여간 복지관에 나와 ‘반려물고기 도우미’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A씨가 이웃 주민들로부터 번식력이 높은 작은 물고기인 구피에 빗댄 ‘구피 아저씨’로 불리는 이유다.

저출생·고령화와 같은 인구 구조 및 1인 가구 등 가족 형태의 급격한 변화로 사회적 고립·은둔에 처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2021년 4월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고독사예방법)이 시행된 이후 정부 차원의 고독사 예방 대책 관련 논의가 한창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첫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조만간 사회적 고립가구 발굴과 맞춤형 서비스 지원체계 등의 내용을 담은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2023∼2027년)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금이 사회적 고립 대응할 ‘골든타임’

고독사예방법 시행 전후 고독사 지원과 발굴은 주로 노인 1인 가구에 집중된 게 현실이다. 지원 대상을 중장년과 청년층까지 확대하고 취약계층뿐 아니라 전 국민이 외로움과 고립 정책의 대상자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의 고독·고립대책담당실과 영국의 외로움부와 같이 고립·은둔 문제를 전담하는 컨트롤타워의 설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국내에 처음으로 유품정리 서비스를 도입한 김석중 키퍼스코리아 대표는 지금이 사회적 고립에 대응할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중장년층의 고립·은둔 문제가 우리보다 20여년 앞서 사회 문제화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 단카이세대(1947∼1949년생)가 1990년대부터 ‘잃어버린 30년’을 겪는 과정에서 고독사,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8050문제’(중년 히키코모리가 70∼80대 부모에 의존해 생활하는 현상) 등의 문제가 불거졌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경제난과 가파른 저출생·고령화, 핵가족화 등에서 20여년 전 일본과 유사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제1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가 노인 인구에 진입했고, 저성장 국면에 들어서면서 고립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석중 대표는 “우리나라는 직장 은퇴 이후에 지역사회로 무리 없이 스며드는 부분이 상당히 취약하다는 점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학력과 취업 등 ‘무한경쟁’이 만연하고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 사람들의 고립감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조현주 한국임상심리학회장(영남대 심리학과 교수)은 “취업과 입시실패 등 단 한 번의 실패도 기다려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뒤처지면 낙오자’라는 마음에 소외감과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중장년 실직 후 재기 지원 강화해야”

사회적 고립가구 조기발굴과 맞춤형 서비스 지원은 복지 정책의 기본 ‘공식’이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고독사 관련 정책은 사회·경제·문화·교육·복지·노동 등 광범위한 분야와 연관된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선임연구위원은 고독사에서 비중이 가장 큰 중장년을 주목하고 있는 전문가 중 한 명이다.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21년 기준 50∼60대 남성이 고독사 사망자의 절반 이상(58.6%)을 차지해 가장 많았다.

송 연구위원은 “고립과 관련된 사회적 원인을 살펴보면 대체로 직장에서 실직·은퇴하거나 사업실패, 이혼 등을 겪은 경우가 많은데 이들을 사회로 복귀시키는 지원 체계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공과 민간기관인 풀뿌리조직이 협업해 위험군을 찾고, 이들이 ‘연결된다’는 느낌이 들도록 일상회복을 지속해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수급대상자 등 공공의 지원 대상은 대체로 안전망에 들어와 있지만, 고립의 경우 스스로 지원을 거부하는 사례도 많아 지역사회 내 위험군 분류와 발굴이 더 체계화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조미정 전문위원은 “흩어져있는 상담창구를 비영리단체(NPO) 등과 협의해 통합창구로 만들고, 지역 단위에서 ‘관계성’을 형성할 수 있게 지역거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간 복지관의 사례관리와 지역조직 사업이 정부 사업과 연계되도록 민관 협력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인력 확보는 필수, 전담부처도 신설해야

사회적 고립·고독 지원 대책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충분한 인력이 확보돼야 하지만 인력계획은 기본계획에서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송인주 연구위원은 “고립된 사람 한 명을 일상회복하게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복지 인력과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추가로 확보하지 않으면 공염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본계획 연구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예산이 수반되지 않으면 권한과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며 “정부가 진정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전담인력이 반드시 신규로 배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과 영국처럼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전담부처를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위험군을 발굴할 때 실업이 의미 있는 지표로 쓰이지만 발굴 시스템에서 고용노동부와의 연계는 낮은 편이다. 주거 환경 등을 활용하기 위해선 국토교통부와의 연계도 필요하다. 조 전문위원은 “각 부처가 개별적으로 움직이면 땜질식 대책만 양산하게 된다”고 했다.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를 수행한 연구진은 앞으로 고독사만이 아니라 “외로움과 고립에 방점을 둔 포괄적인 대책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짚었다. 비수급자와 비독거가구를 포함한 전 국민이 고독사 관련 정책 대상자가 돼야 한다는 조언이다. 연구진은 고독이란 명칭이 ‘스스로 고립을 즐기다’라는 긍정적인 의미가 포함된 만큼 고독사를 ‘고립사’로 바꿀 것도 제안했다.


이정한·정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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