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판례로 자가용 화물차 임대 금지
국토부, 유권해석으로 영업행위 인정
“영업용이 판 바꾸려는 시도일 뿐” 일축
전국 자가용 도로차단차 1만대 달해
대부분 무허가·무자격 업체에서 운용
영업용은 100여대 불과 대체 어려워
자가용, 비용절감하려 안전조치 허술
공사업체와 유착·상납 소문까지 나와
사고 발생시 피해보상 받지 못할 수도
#. 2021년 10월22일 오후 2시50분쯤 서천공주고속도로 부여IC 부근. 부여1터널 조명등 보수작업을 위해 1차로를 막고 있던 2.5t 공사 안내 유도차량(사인카)을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이 추돌했다. 이 사고로 SUV 차에 타고 있던 30대 운전자가 목숨을 잃고, 20대 동승자는 중상을 입었다.
#. 2022년 12월29일 오후 11시쯤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휴게소 인근에서 대형 택배 트럭이 고속도로 공사 현장을 덮쳐 2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
#. 지난 3월29일 오전 5시50분쯤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면 기흥휴게소 부근에서 SUV 차량이 1차로에 정차 중인 사인카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3명이 사망했다.

고속도로를 지나다 보면 흔히 마주치는 공사현장. 도로 유지보수와 점검 등을 이유로 각종 공사가 이뤄지는 이곳 작업장 주변에는 공사차량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도로차단용(화물자동차의 구조변경을 통해 공사현장에서 활용가능토록 각종 등화 및 안전장치를 부착) 차량이 목격된다. 시속 100㎞를 넘나드는 차량 왕래가 잦다 보니 안전을 고려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업 구간 내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는 얼마나 위험할까.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2021년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일반 교통사고는 1735건에 170명(9.9%)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반면 고속도로 작업장 내 교통사고는 41건에 12명(31%)이 숨졌다. 치사율로만 보면 일반 교통사고의 3배가 넘는 수치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얘기다. 최근 5년간(2018~2022년) 통계에서도 알 수 있다. 고속도로 작업장 내 교통사고 150건 가운데 사망자는 무려 45명(작업자 20명 포함)에 달했다. 교통사고 4건당 1명씩 목숨을 잃고 있는 것이다. 고속도로 공사현장 사고는 졸음운전과 주의태만이 주요 원인이다. 하지만 공사 현장에 대한 도로차단차량의 허술한 사전 경고와 안내 미비 책임도 크다. 더구나 최근 5년간 사고현장에 있었던 도로차단차량의 대부분은 흰색 번호판을 단 자가용 화물차량인 것으로 드러났다. 자가용으로 버젓이 택시영업을 하다 화를 부른 셈인데 비롯되는 부작용이 없을 리 없다. 경각심을 일깨워 인명피해를 줄일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유권해석에 밀린 관련 법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제56조는 “자가용 화물자동차의 소유자 또는 사용자는 자가용 화물자동차를 유상으로 화물운송용으로 제공하거나 임대하여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대법원 판례(2011년 4월)는 화물자동차 임대 등의 영업행위를 위해서는 관련법에 따른 운송사업 허가를 취득한 후 영업용 번호판 부착 및 관련 영업용 자동차보험 가입, 운전자의 화물운송 종사자격 요건 구비 등을 완료해야만 한다고 명시했다. 화물운송에만 국한하지 않고 화물차 영업행위에까지 제한을 둔 것이다. 화물차 사고가 승용차에 비해 막대한 인명 및 재산피해를 발생시키는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 화물차 관리감독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엄연한 불법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법을 무시한 자가용 도로차단차량이 전국 도로를 누비며 공사현장 작업자를 포함한 국민의 안전지킴이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관련 법령 및 대법원 판례는 유명무실하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도로차단차량을 화물운송과 직접 관련이 없는 차량으로 규정해 자가용 도로차단차량의 임대행위는 화물차 운수사업법에 저촉되거나 위반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놨기 때문이다. 자가용 도로차단차가 화물운송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이들의 영업행위를 묵인 또는 방조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 안전은 뒷전에 둔 소극적인 법 해석이다. 이러다 보니 일선 경찰의 자가용 도로차단차 영업행위에 대한 불법성 인지 및 그에 따른 단속실적 또한 전무하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자가용 도로차단차 영업행위를 제한하기 위해선 화물차 운수사업법 제56조에 적시된 ‘화물운송용’이란 내용을 삭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자가용 화물차량의 차단차량 영업을 제한할 뜻이 없다고도 했다.
◆자가용 도로차단차가 사고 유발 요인?
전국 고속도로 공사 현장은 200~300곳에 달한다. 작업장마다 4∼8대의 도로차단차량 투입이 기본이다. 하루평균 1000대가 넘는 도로차단차량이 필요한 셈이다. 전체 도로의 30%가량을 차지하는 고속도로 외에 국도, 지방도까지 포함할 경우 숫자는 더 늘어난다. 영업용 도로차단차 비상대책위 박이용 위원장은 지난 15일 “도로차단차량은 통상 라바콘(차량통제용가설물) 차량 1대, 사인카 1대, LED 도로전광표지판(VMS) 차량 2대 등 4대가 1개조로 움직인다. 야간 공사나 장기 공사인 경우 6~8대로 늘어난다”며 “하지만 영업용이 아닌 자가용의 경우 경비 절감 등을 위해 이런 정해진 차단차량 투입 안전 기준을 줄이기 일쑤”라고 했다. 덩달아 교통사고 위험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전국적으로 약 1만대에 달하는 자가용 도로차단차량의 절반 이상이 노후(2012~13년식)한 데다 단순 구조변경을 통해 저가의 안내 및 경고장치를 부착해 도로차단용으로 운용 중이다. 이에 반해 노란색 영업용 번호판을 달고 정상 운영 중인 도로차단차량은 100여대에 불과하다.

도로차단차량 운전자의 업무 이해 및 숙련도 부족도 문제로 거론된다. 자가용 도로차단차 운전자의 경우 별도 자격요건이 없을뿐더러 인건비 절감 등을 위해 단순 일용직이 고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대로 된 도로차단이 될 리 만무하다. 이러니 자가용 도로차단차량이 오히려 사고 유발 요인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박 위원장은 “고속도로 작업장에서 도로차단차량 운전자가 교통관리기준 등 업무 절차를 미숙지하거나 미준수하는 것은 교통사고 자체를 유발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국민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데 해당부처에서 단속을 소홀히 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자가용 도로차단차를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 무허가·무자격 업체이다 보니 도로공사 업체와의 차량 임대계약 과정에서 정당한 비용 및 근로조건 등을 요구하는 데 무리가 있다는 점도 허술한 도로차단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혜윰 행정사 사무소 이철 대표는 “공사업체와의 유착이나 상납 고리가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2.5t 기준으로 도로차단차량의 공사현장 임대 가격이 제각각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라면서 “이는 단순 불공정 거래에 그치지 않고 결국 자가용 도로차단차량을 운영하는 업자의 과도한 손실보전 시도와 부실 도로차단으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고 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흰색 번호판을 단 자가용 차단차량이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영업용이 판을 바꾸겠다는 시도일 뿐”이라며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해명했다.
◆사고 시 피해보상도 걸림돌
우려스러운 부분은 불법 임대된 자가용 도로차단차의 교통사고 발생 시 보험 보상 문제다. 금융감독원은 현행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에 의거, 자가용 도로차단차에 대해 “영리를 목적으로 요금이나 대가를 받고 반복적으로 사용하거나 빌려준 때에 생긴 손해는 보상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차량 무상 사용이 아닌 경우 보상이 어렵다는 의미다. 사실상 자가용 도로차단차량은 무보험 차량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교통사고 시 자가용 도로차단차 운전자뿐 아니라 상대방 사고 운전자의 적절한 피해보상에 문제가 발생한다. 만약 사고 유가족들이 자가용 도로차단차의 운영과 관리에 문제가 많다는 점을 안다면 피해자 구상권 청구 등 반발이 커질 대목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자가용 도로차단차량의 영업용 차량번호판 부착 의무화가 급선무다. 법에 부합하는 임대행위 자격을 부여하는 동시에, 사고발생 시 충분한 피해보상이 가능한 보험 가입을 강제할 수 있는 길이다. 도로차단차량 운전자의 자격요건을 엄격히 해 사고예방을 줄일 수도 있다. 그 혜택은 도로를 왕래하는 국민들 안전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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