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옹서 커피 한잔… 강한 남부의 불어 독특
16세기를 연상 고르드 마을 지나 더 달리면
사람들 라벤더 밭 아름다운 풍경 담느라 분주
닫힌 철문·입구 안내문 수도원 분위기 말해줘
야외 레스토랑 그늘막을 뚫고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은 화이트 와인의 차가움을 따스하게 데워 혈액에 전달한다. 알코올 기운인지 더위 때문인지 모를 몽롱함으로 식사를 마치고 와인 숍에 들러 늦은 저녁에 마실 와인을 구입한다. 더위에 지쳐 디저트와 커피를 다음 장소에서 주문하기로 하고 일어선다. 미술작품을 모두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하지만, 다음 기회가 다시 있으리라 기대하고 뜨겁게 달아오른 차를 시동 걸고 에어컨 바람으로 식힌다.
근처 마을인 루시용(Roussillon)에서 커피 한 잔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할 생각이다. 루시용은 옛 카탈루냐 공국의 하나로 프랑스 남부, 피레네 동부의 카탈루냐 프랑세즈(Catalogne-Francaise)로 칭한다. 아직 카탈루냐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다. 프랑스 남부를 여행하고 있지만, 스페인 분위기를 느낀다. 강한 남부의 불어를 들으며 올리브밭을 지나 라벤더가 만개해 있는 장소로 향한다.

16세기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이름다운 마을, 고르드(Gordes)를 지나고 바로 남쪽에 있는 원시적인 거주지인 보리마을을 지나쳤다. 돌을 겹쳐 쌓아서 만든 벌통 모양의 오두막집들이 있는 사진이 고르드 관광청 옆에도 붙어 있었지만, 북쪽에 있는 세낭크 수도원(Abbaye Notre-Dame de Senanque)을 방문하기로 했다. 로마네스크 시토회 수도원 중 하나인 이곳은 프로방스 보클뤼즈주 고르드에 있다. 철마다 라벤더밭이 만개해 있어 석회암의 흰색 건물과 라벤더 보랏빛 배경이 유명하다. 제지 공장이 있는 퐁텐-드-보클뤼즈를 방문하고 들렀으면 거리상 더 가까울 수도 있었겠지만, 휴가지에서 즐기는 느긋함으로 시골길을 돌아 돌아 방문한다.
때마침, 머무르는 숙소를 소개해 준 지인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이른 아침, 호텔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이제야 연락이 온 걸 보면 한국 시간이 오전인가 보다. 놀란 목소리에 반가움으로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시작하려니 전화가 불통이다.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 따라 운전 중이었다. 벨은 울리지만 전화가 끊긴다. 요즘 세상에 이런 일은 흔치 않은데, 신기할 따름이다. 이렇게 외진 곳일까? 길은 험하고 높은 지대이지만 주차장 차량을 보면 방문객들도 많다.



수도원 분위기는 닫힌 철문과 입구 안내문에서 알 수 있다. 주차장을 통하여 수도원 건너편, 정원으로 걸어 들어간다. 수도원을 방문할 수는 없고 라벤더밭이 펼쳐진 정원을 거닌다. 사람들이 풍경을 사진에 담느라 북적인다. 수도원에서 정숙해야 한다는 안내문 문구도 잊은 채 기념품 판매장에서 상품을 고르느라 관광객들은 분주하다. 라벤더를 재료로 만들어진 비누, 화장품, 향수 등 다양한 제품들이 진열대에 늘어서 있다. 꿀로 만든 제품들이 유독 인상 깊다.
라벤더 박물관은 1991년 라벤더 재배자와 양조업자가 함께 만들었다고 한다. 프로방스의 상징적인 꽃, 라벤더를 알리고 적극적인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활동이 궁금하여 들러 보기로 했다. 입장료를 내니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는다. 혹여 통역 안내기에 한국어가 있는지 물으니 웃으며 중국어, 일본어는 있는데 한국어는 없어 미안하단다.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박물관에 들어서니, 첫 순서가 영상물이다. 독일어로 상영되고 있고 나중에 보겠다고 하고 다음 순서로 향한다. 라벤더 에센스 추출 방법을 설명하는 과정들이다. 무슨 비밀인 양 사진을 찍지 말란다. 모든 기계가 동으로 만들어져 있어 신기하다. 7월 1일부터 8월 25일까지가 증류 시기란다. 지금이 라벤더가 만개한 시기이고 수확기라 축제가 열리고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프로방스 라벤더 개척자인 랭셀레(Lincele) 가족이 1890년부터 5대에 걸쳐 이루어낸 라벤더 생산과 보존, 그리고 유산으로서 라벤더를 이야기한다. 라벤더에 관해 조금 이해하고 증류 방법을 훑고 나니 가게로 이어진다. 이곳 역시 쇼핑센터 같다. 뛰어난 마케팅 전략이다. 망설일 이유 없이 물건을 사들게 된다. 이곳에서도 라벤더 재배자의 동맹이라는 꿀벌이 흥미로웠고 벌꿀 제품들이 라벤더 제품 못지않게 눈길을 끌었다. 꿀벌의 끊임없는 채집으로 라벤더 수확량이 증가하고 꿀 생산량이 넘쳐난다고 한다. 라벤더 향기에 흠뻑 빠져 고지대인 이곳에서 꽃과 벌과 나비를 곁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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