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손상된 건축문화재 목부재·석재·기와 한자리
선조들 지혜 배우고 계승하는 ‘전통 건축 寶庫’
경기 파주시 탄현면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의 거대한 수장고에 들어서니 화재 현장인 듯 메케한 그을음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이곳은 2008년 2월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숭례문 방화 사건에서 피해를 입은 문화재의 ‘요양 병원’ 역할을 하고 있다.
방화범에 의해 국보 숭례문이 화염에 휩싸여 시뻘겋게 타오르다 검은 잔해만 남기고 붕괴했을 때 온 국민의 마음도 무너졌다. 다행히 2012년 숭례문이 복원됐어도 충격은 국민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당시 화재로 타다 남거나 그을음이 뒤덮이는 등 화상을 입은 부재(部材·구조물의 뼈대를 이루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는 여러 가지 재료)는 3000여점에 이른다. 이 ‘화상 환자들’이 현재 센터에 ‘입원’해 있다.
센터는 문화재청 산하 전통건축수리기술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전통건축 부재와 재료의 체계적 수집·보존 및 조사·연구한다.
국보 숭례문 화재로 피해 부재 역시 국보라는 여론이 형성됐고, 복구와 복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따라 문화재관리체계의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2017년 전통건축수리기술재단이 설립됐다. 설립 직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 부재보관소, 충남 부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건조물부재보관소, 대전 유성구 국립문화재연구원에 나뉘어 보관되던 숭례문 화재 수습부재를 센터 수장고로 모았다. 이관 후에는 건식세척과 훈증살균 등의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숭례문 부재는 형태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거나 작은 파편도 빠트리지 않았다.
전국 각 지역 문화재 수리현장에서에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어 교체된 전통건축 부재 중 특이성이 있는 것도 선별하여 보관하고 있다. 커다란 목부재, 석재, 기와까지 다양하다.
전통건축은 선조들의 깊은 지혜가 담긴 산물이다. 역사·사회적·과학·예술적 가치를 망라한 문화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전통건축 부재에는 재료의 사용에서부터 구조와 형태, 기법과 기술 등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다.
숭례문은 원래 조선 태조 때인 1396~1398년에 걸쳐 건립된 후 세종 때인 1447년 한 차례 개축된 것 외에는 알려진 바 없다. 1961~1963년 있었던 해체·수리 시에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새로 짓거나 고친 집의 내력, 공역 일시 등을 적어둔 문서)을 통해 성종 때인 1479년에도 비교적 큰 규모의 수리가 있었음이 새롭게 밝혀졌다.
센터에 보관 중인 부재는 분류체계를 만들어 기본정보와 이력정보를 정리하여 통계를 내고, 전자태그(RFID 인프라) 기반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여 관리한다. 훼손된 이유와 연대 측정, 보수·보강을 위한 기법 등을 분석·연구한다.
부재를 이용해 전시 콘텐츠로 활용하고 학생이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기도 한다. 문화재 원형보존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화재 현장에서 수습한 잔존 부재를 재사용해 숭례문 2층 문루(門樓) 일부를 재현했다.
전통건축 부재는 오랜 시간 크고 작은 수리를 겪으며 새겨 온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다. 우리 선조의 지혜와 전통을 지닌 문화유산이다.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 힘쓰는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의 역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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