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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원의 ‘노르마’ vs 이용훈 ‘투란도트’

입력 : 2023-10-30 20:22:56 수정 : 2023-10-30 20: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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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수놓은 대작 오페라 향연 2題

벨리니의 벨칸토 오페라 ‘노르마’
伊 프리 마돈나 여지원의 첫 타이틀 롤
저음과 고음 오가며 고급스럽게 노래
해외 제작진 초연작 재연 ‘양식 오페라’

푸치니의 미완성 유작 ‘투란도트’
세계 주요 극장이 원하는 테너 이용훈
대표 아리아 ‘네순 도르마’ 앙코르 화답
연극계 거장 손진책 연출 ‘한식 오페라’

오페라 ‘노르마’와 ‘투란도트’가 지난 26∼29일 서울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랐다. ‘노르마’는 ‘벨칸토 오페라’(화려한 기교와 창법을 중시하는 오페라)의 대가인 벨리니(1801~1835)의 대표작이고, ‘투란도트’는 푸치니(1858∼1924)의 최대 야심작이자 미완성 유작이다. 국내 양대 문화예술기관이 동시에 대작 오페라를 선보인 건 드문 일인 데다 마치 자존심 경쟁이라도 하듯 출연진 섭외부터 많은 공을 들인 작품이라 공연 전부터 여러모로 화제를 모았다. 특히, 국내에서 만나 보기 힘들었던 세계 최정상급 테너 이용훈(50)과 소프라노 여지원(43)이 ‘투란도트’(칼라프 왕자 역)와 ‘노르마’(노르마 역)의 주역으로 두 차례 무대에 선다고 해 기대감이 더욱 컸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메트),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영국 런던 로열오페라, 빈 슈타츠오퍼 등 세계 주요 극장이 앞다퉈 찾는 테너인 이용훈에게 세종문화회관 전속예술단체인 서울시오페라단의 ‘투란도트’는 국내 첫 데뷔작이다.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맹활약하는 ‘프리마돈나’ 여지원 역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후 국내에서 타이틀 롤(작품 제목과 같은 이름의 주인공) 데뷔를 하는 건 처음이다. 그만큼 두 사람에겐 뜻깊은 무대이고, 고국 관객들 앞에서 하는 공연이라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베테랑 주역 가수들임에도 첫날(26일) 공연 초반에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26∼29일 서울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른 오페라 ‘노르마’와 ‘투란도트’는 국내에서 만나 보기 힘들었던 세계 최정상급 테너 이용훈과 소프라노 여지원이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화제가 됐다. 사진은 ‘노르마’(노르마 역)에서 주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여지원. 예술의전당 제공

여지원만 해도 1막에선 부담감 때문인지 자신 있게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노르마’를 상징하는 아리아 ‘카스타 디바(정결한 여신)’를 높은 계단구조물 위에서 노래할 때도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2막부터는 ‘역시 여지원이다’란 탄성을 자아낼 만큼 탁월한 기량을 뽐냈다. 피지배 민족을 이끄는 종교적·정치적 지도자, 사랑을 갈구하지만 배신당하는 여성, 숨겨야 할 아이들을 둔 어머니 등 노르마가 감당해야 할 다양한 인격과 상황에 따른 고난도의 가창력과 섬세한 연기력으로 극을 이끌어 나갔다. 이지영 음악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는 “1막 때 다소 조심스럽게 부른 게 걸렸을 뿐 금세 좋은 성악가임을 보여줬다”며 “노르마 역을 소화하려면 저음과 고음, 기교 등 많은 음역대에서 안정감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여지원이 그랬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호흡 흐름대로 자연스러우면서도 고급스럽게 노래했다”고 호평했다. 여지원의 상대인 폴리오네 역의 테너 마시모 조르다노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아달지사 역의 메조소프라노 테레사 이에르볼리노와 오로베소 역의 베이스 박종민이 메꿔주었다. 세계적 오페라 지휘자 로베르토 아바도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들려준 음악도 훌륭했다.

‘투란도트’(칼라프 왕자 역)에서 주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이용훈. 세종문화회관 제공

이용훈 역시 같은 날 첫 공연 직후에는 “20년 동안 기다렸던 (고국) 데뷔 무대여서 그 어떤 외국 무대보다 긴장되고 떨렸다”며 “해외 일정으로 (갑자기 귀국하느라)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돼 부족한 점도 많고 힘이 들었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하지만 28일 두 번째 공연에선 그가 왜 전 세계 ‘투란도트’ 무대에서 100회 이상 칼라프 왕자를 맡고, 가장 바쁜 오페라 가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훤칠한 외모의 ‘리리코 스핀토 테너’로서 서정적이고 힘찬 음색을 자유자재로 구사했고, 연기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이용훈이 ‘공주는 잠 못 이루고’로 잘 알려진 이 오페라의 대표 아리아 ‘네순 도르마(아무도 잠들지 말라)’를 부를 때가 공연의 백미였다. 3000석 규모의 대극장을 가득 채우고 숨죽여 듣던 관객들은 뜨겁게 환호를 보내며 ‘브라보!’, ‘앙코르!’를 외쳤다. 잠시 머뭇거리며 미소 짓던 이용훈은 지휘자와 신호를 주고받은 뒤 다시 한 번 ‘네순 도르마’를 열창했고 관객들은 황홀경에 빠졌다. 함께 호흡을 맞춘 투란도트 역의 소프라노 이윤정과 칼라프 시녀 류 역의 소프라노 서선영, 칼라프 아버지 티무르 역의 베이스 양희준도 맞춤옷을 입은 듯한 노래와 연기로 몰입감을 배가시켰다.

한편 두 작품은 ‘레지 테아터’(원작의 시·공간적 배경이나 결말을 연출가의 해석과 의도에 따라 달리하는 것) 형식으로 차린 고급 양식 오페라와 한식 오페라에 비유할 만했다. ‘노르마’는 연출가 알렉스 오예 등 해외 유명 오페라 제작진이 2016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한 작품을 그대로 가져왔고, ‘투란도트’는 서울시오페라단이 연극계 거장 손진책 연출에게 첫 오페라 연출을 맡겨 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두 연출가 모두 원작의 배경과 다르게 세련되고 감각적인 무대를 선보였고, 노르마와 투란도트가 총에 맞아 죽는 것으로 바꾸는 등 결말도 파격적으로 장식했다. 관객 취향과 기대에 따라 이들 작품의 맛에 대한 호불호가 갈렸을 듯하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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