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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에 메모한다

이 끄적임이 우연히

네게 발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면

편지라고 해도 될까

 

메모 같은 편지라면

편지 쓴다가 아니라

메모한다처럼 편지한다로 말해도 될까

 

끄적임만으로 닿기를 바라는 욕심으로

창문을 열어 메모에 비를 조금 맞혔다

 

이런 날은 당신에게 밥을 차려주고 싶어

소세지 김 김치 후라이 이런 것들이랑 쌀밥

국은 없어도 좋고 있다면 미역국

 

(하략)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는 리시안셔스의 꽃말은 감사, 변치 않는 사랑이라고 한다.

 

‘나’는 지금 ‘당신’을 향한 고마움을 마음 가득 품고 있다. 이 시 혹은 편지로써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마음과는 별개로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듯하지만. 생략한 시의 뒷부분을 보건대, 삶은 좀처럼 원하는 것들로 채워지지 않고, 때문인지 ‘나’의 영혼은 잿더미와 다름없는 처지. 그런 ‘나’의 마음은 과연 전해질 것인가. 김이나 김치를 내세운 소박한 밥상조차 아직은 소망에 가까울 뿐인데.

 

하지만 마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의 일을 한다. 창을 열고 비를 맞는다. “창문을 열어 메모에 비를 조금 맞혔다”는, 얼핏 대수롭지 않은 듯 보이는 행동은 헤아릴수록 귀하게 다가온다. 당장 목적지에 당도하지 못할지라도 문을 연다는 것. 당신 쪽으로 손을 뻗는다는 것. “편지 쓴다”가 아닌 “편지한다”의 마음. 마음은 벌써 가고 있는 것이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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