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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30가닥 기부도 누군가에게 도움되죠”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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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1-17 23:00:00 수정 : 2024-01-17 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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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어머나’운동본부 이사장

매월 평균적으로 5000명 기부
머리 모두 민 소아암 환자 대상
16년째 가발 만들어 무료 나눔
“이제 신청자 많았으면 좋겠어”

“7살 딸을 키우고 있는 주부입니다. 제 딸은 근간장성 이영양증이라는 희귀질환을 가지고 있어요. 아이가 아프단 걸 알고 키우면서 주변에 있는 아프고 특별한 친구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딸의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어 사용하면 힘든 투병생활을 견딜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어머나운동본부에는 이런 정성이 담긴 손편지와 함께 가발을 만드는 데 쓰이는 긴 머리카락이 매월 수천건씩 들어온다. 어머나는 ‘어린 암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을 줄인 말이다. 2008년 설립된 어머나운동본부는 항암 치료 때문에 머리를 모두 민 소아암 환자에게 가발을 만들어 16년째 무료로 나누고 있다. 기부자들은 3세 소아부터 칠순이 넘은 할머니까지 다양하다. 자신이 암이나 희귀질환을 앓거나 환자를 자녀로 둔 부모 등 아픔을 아는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어린 환자들에게 힘이 되고자 선한 나눔을 실천하기도 한다.

김영배 어머나운동본부 이사장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사학회관 사무실에서 기부받은 머리카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사학회관에서 만난 김영배 어머나운동본부 이사장은 “18년 전쯤 난소암 걸린 아이가 있는 병동에 연예인과 같이 재능기부를 한 적이 있다. 아이들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아 담당 의사한테 물어보니 항암 치료를 하고 삭발 때문에 상실감이 크다고 들었다”고 했다. 항암제가 워낙 독해 환자 대부분은 항암 치료 과정에서 머리가 빠진다. 머리가 지저분하게 빠지면 환자는 상실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는 치료 효과에도 영향을 주는 탓에 환자는 미리 삭발한다. 특히 학교서 친구들을 만나고 사춘기도 겪는 소아암 환자들에게 삭발은 큰 스트레스가 된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원래 갖고 있던 자신의 머리카락이란 생각에서 어머나 운동이 시작됐다. 단체는 기부자들에게 받은 머리카락을 맞춤형 가발로 제공한다. 머리카락을 받고, 가발로 만드는 대부분 과정이 재능기부로 이뤄진다. 25㎝ 이상 머리카락을 30가닥 이상 기부받아 매월 5명 넘는 환아에게 가발을 만들어준다. 환아를 직접 찾아가 두상 본을 뜨고 분류 작업이 끝난 머리카락을 살균을 위해 산 처리한 뒤 한올 한올 심으면 가발이 완성된다. 거의 한 달이 걸리는 작업이다.

한 사람의 머리카락은 10만 가닥 정도다. 수백명의 머리카락이 모여 환자 한 명의 새 모발이 만들어진다. 김 이사장은 “대부분은 뭉텅이로 보내서 30가닥을 훌쩍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가발은 빠진 머리카락으로 만들어도 문제가 없는데 하루에 50가닥 정도 머리카락이 빠진다”며 “기부가 큰돈이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일상의 작은 행동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30가닥을 기부 기준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매월 평균 5000명이 기부한다. 적게는 4000명, 많을 땐 8000명가량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내온다. 더운 날씨 때문에 머리를 짧게 자르는 여름에는 기부가 줄어든다. 두발을 제한하는 중·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2월쯤이 기부가 많은 시기다.

기부자 중엔 남성도 많다. 김 이사장은 “군대 가기 전에 2∼3년을 기르고 입대 전에 잘라서 보내주는 경우도 많다”며 “이 운동을 하면서 젊은 친구들을 보면 우리나라 미래가 밝다고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기부는 충분한데 신청자가 생각보다 적은 게 아쉬운 점이다. 김 이사장은 “기부자들께 정말 감사하다. 이제는 신청자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병원장이나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추천자로 신청하면 운영 회의에서 대상자 사연 등을 검토하고 취약계층 위주로 뽑는다. 빈부 상관없이 질환의 고통은 크겠지만, 나눔이다 보니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어서다. 김 이사장은 “가발 무상 나눔을 잘 모르는 환자와 가족들이 많은데, 어머나운동본부에 부담 없이 의뢰하면 일정한 절차를 거쳐 환자에 딱 맞는 가발을 드리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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