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실패 탓에 경질된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이 자신의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 선임 과정에 대한 비화를 밝혔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클린스만 전 감독을 경질하며 “후보들을 선정해 정상적으로 뽑았다”고 설명한 것과 달리, 클린스만은 “농담했는데,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클린스만 전 감독은 독일 매체 슈피겔을 통해 한국 대표팀 부임 과정부터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 탈락에서 느낀 감정 등 소회를 밝혔다.
매체는 심층 인터뷰 기사에서 클린스만 전 감독이 한국과 연을 맺는 과정이 단지 ‘우연’이었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대한축구협회가 그를 영입하기 전까지 클린스만 감독은 3년 동안 감독을 맡지 않았다”며 “(한국 부임 전엔)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BBC 해설자이자 FIFA 기술연구그룹(TSG) 일원의 이중 역할을 수행했다”고 전했다.
이어 “월드컵 당시 한국은 16강전에서 브라질에 패배했고, 파울루 벤투 전 감독은 사임했다. 이때 VIP석에서 정 회장을 만난 클린스만은 ‘몽규, 만나서 반갑다. 감독을 찾고 있나’고 되물었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체는 “클린스만은 단지 ‘농담’으로 말한 것뿐인데, 당시 정 회장은 완전히 굳어진 채로 ‘진심이냐’고 되물었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만남은 이튿날 도하의 한 호텔 카페에서 또 한 번 이뤄졌다. 클린스만에게 관심이 간 정 회장이 따로 만나기를 요청한 것이다.
매체는 “여러 이야기가 오간 이 자리에서 클린스만은 ‘몽규,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세요. 우리가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니 그냥 말했던 겁니다. 혹 흥미가 있으면 또 연락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또 “몇 주 뒤 정 회장이 클린스만에게 직접 전화해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클린스만은 ‘농담에서 모든 일이 시작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클린스만 전 감독은 정 회장과의 만남에서 농담을 던졌지만,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정 회장은 끝내 클린스만 전 감독을 선임하기까지에 이른 것이다. 우연한 만남에서 나온 농담에 클린스만 전 감독은 3년 간 사령탑을 맡지 못하다가 감독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 결말은 1년 만의 경질. 클린스만 전 감독은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 탈락 이후 무전술 논란, 재택 등 외유, 선수단 관리 실패 등 숱한 논란을 일으키다가 지난주 지휘봉을 내려놨다. 정 회장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갖고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최종적으로 대표팀 감독을 교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경질 소식 발표 당시 클린스만 전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과 달리 정당하게 선임 과정을 거쳤다고 해명했다. 정 회장은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에서 여러 가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벤투 감독 선임 때와 같이 똑같은 프로세스로 진행했다”며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할 때도 61명에서 23명으로 좁혀지고 최종으로 마이클 뮐러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이 5명으로 정했다. 이후 우선순위 1, 2위를 2차 면접했고, 클린스만 감독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한편 클린스만 사단은 경질 이후에도 변명에 급급했다. 클린스만 전 감독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한국 대표팀에 불어넣었다”고 자평했다. 그는 “이강인과 손흥민의 갈등이 경기력에 영향력을 끼쳤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안드레아스 헤어초크(오스트리아) 전 수석 코치도 선수단을 탓했다. 헤어초크 전 코치는 지난 17일 한 오스트리아 매체에 기고한 칼럼에서 “중요한 경기 전날 저녁 팀 내부에서 세대 갈등이 벌어지고 톱스타인 손흥민과 이강인이 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이들은 매우 감정적인 주먹다짐으로 팀 정신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이어 “몇 달에 걸쳐 공들여 쌓은 것이 거의 모든 것이 단 몇 분 만에 무너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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