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도서. 1953년 휴전 직후 북방한계선(NLL)이 설정된 이래 남북간 무력충돌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1970년대부터 북한은 끊임없이 서북도서에서 도발을 거듭하며 NLL 무력화를 시도해 왔다. 이 과정에서 충돌이 거듭됐고, 희생도 끊이지 않았다.
포항급 초계함 천안함(1200t)은 NLL 무력화를 위해 북한이 얼마나 집요하게 도발을 진행해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해군 2함대 소속으로 서해 NLL 경계를 수행하던 천안함은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남방 2.5㎞ 해상에서 북한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 46명이 전사했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지금, 북한의 태도는 더욱 적대적으로 바뀌고 있다. 핵·미사일 개발에 몰두하던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 해군력 강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제2의 천안함 피격이 벌어지지 않도록 경계를 해야 하는 이유다.
◆北 도발, 입체적으로 변했다
천안함 피격은 NLL을 둘러싼 남북간 무력충돌 기조를 송두리째 뒤바꿨다.
북한이 NLL 무력화에 본격적으로 나선 1973년 이후로 서해 NLL에서의 충돌 양상은 수면 위에서 벌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남북 모두 소형 함정이나 선박을 NLL 일대에서 사용했고, 이들 간에는 충돌도 끊이지 않았다.
NLL 북쪽에서 활동하던 북한 함정들이 NLL을 침범, 우리측 해역으로 남하하면 인근 해역에서 경계 임무를 수행하던 우리측 함정이 대응에 나섰다.
이때 북한 함정들은 대개 NLL 북쪽으로 돌아갔지만, 도발을 감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북한은 1970년 6월 연평도 근해에서 어로 보호 임무 중이었던 해군 방송선을 습격, 납치해갔다. 방송선에 타고 있던 해군 장병 20명은 지금껏 돌아오지 못했다. 1973년 10∼11월에는 43회에 걸쳐 서해 NLL을 침범하는 ‘서해사태’를 일으켰다.
한국 해군의 전력이 현대화되면서 이같은 국면은 완화됐다. 하지만 NLL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북한의 해상 도발은 계속됐다.
1999년 제1차 연평해전 이후 제2차 연평해전(2002년), 대청해전(2009년) 등이 벌어졌다. 세부적인 양상은 차이가 있지만, 수면 위에서 벌어진 해상 교전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남북간 NLL 충돌이 수면 위에서만 벌어지는 양상은 NLL에서 벌어지는 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하는 효과가 있었다.
양측 모두 추가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이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소형 함정 위주의 해상도발에 치중했고, 우리측도 ‘비례성의 원칙’에 따라 대응하면서 NLL에서의 충돌은 제한적인 수준에서 이뤄졌다.
천안함 피격은 이같은 양상을 단번에 깨버렸다. 서해는 수심이 낮아 잠수함 작전 수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을 깨고, 북한은 잠수함을 서해에 투입해 천안함에 어뢰 공격을 감행했다.
이는 NLL에서 벌어지는 북한 도발의 범위가 대폭 확장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수면 위는 물론이고 수중과 공중 및 지상에 이르는 모든 영역에서 도발이 벌어질 위험이 커졌다.
서북도서에서 충돌의 양상이 한층 입체적으로 바뀌면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북한이 실행에 옮길 것으로 예상되는 도발 시나리오도 크게 늘었다. 한국군의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2010년 연평도 포격전은 이같은 국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북한이 서해 NLL 이북에 있는 황해도의 긴 해안선을 따라 배치한 방사포와 해안포는 유사시 서북도서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전력이다.
서북도서를 사정권에 둔 북한 해안포는 100여문에 달한다. 연평도 북쪽 갈도 등에 배치된 122㎜ 방사포도 위협적이다.
한국군도 서북도서에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로켓 등을 배치했지만, 양적 측면에선 북한이 앞서는 모양새다. 북한은 이같은 점을 이용해 연평도를 포격했다.
위성항법장치(GPS) 교란도 2010년에 처음 등장했다. 북한은 2010년부터 최근까지 황해도 개성과 연안 등에 설치한 GPS 교란장비를 통해 서해 NLL 이남의 항공기와 선박에 GPS 교란을 감행했다.
이곳은 인천 국제공항과 인천·평택항을 드나드는 민간 항공기와 선박이 지나는 통로다. 안전을 보장해야 할 민간 항공기와 선박도 위협 대상에 포함된 셈이다.
미사일 공격까지 등장했다. 지난 2022년 11월 북한은 동해 NLL 남쪽인 강원 속초 인근 공해상에 SA-5 지대공미사일을 쐈다. 이로 인해 울릉도에 공습경보가 발령됐다. 북한은 그간 해안포와 방사포를 NLL 이남으로 쐈지만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사상 처음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지대공미사일을 탄도미사일처럼 발사하는 사례가 있었는데, 이같은 양상이 한반도에 등장한 것이다.
◆‘북한판 접근 거부’ 전략 나오나
NLL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의 태도는 최근 들어 더욱 거칠어지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 영공, 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월 신형 지대함미사일 바다수리-6형 시험발사에선 “서해에 몇 개의 선이 존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또한 시비를 가릴 필요도 없다”며 “명백한 것은 우리가 인정하는 해상 국경선을 적이 침범할 시에는 그것을 곧 우리의 주권에 대한 침해로, 무력도발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NLL을 무력화하는 새로운 경계선을 설정, 도발에 나설 공산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북한은 1999년 경기도와 황해도 경계선을 서해로 연장한 형태의 해상경계선을 주장, 서해 서부와 중부 공해상을 자신의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2007년 북한은 NLL과 서북도서 중간에 해상경비계선을 설정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이 지대함미사일 시험발사 당시 ‘연평도와 백령도 북쪽 국경선 수역’이라고 언급했다는 점에서 2007년 기준을 적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확실한 것은 황해도 해안에 바짝 다가선 NLL을 무력화하고 해상경계선을 남쪽으로 밀어내겠다는 것이 북한의 의지라는 점이다. ‘북한판 접근 거부’ 전략의 출현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이를 실현하면 북한 최대 곡창지대인 황해도와 맞닿은 서해상에 한·미 연합군의 접근을 저지할 수 있다. 접근 거부 전략을 통해 이곳 일대의 제해권을 장악, 안보 불안을 해소하면서 해주항 기능을 회복하는 경제적 이득도 꾀할 수 있다.
특정 해역에 대한 접근 거부 전략에 효과를 거두려면 먼 거리를 날아가는 유도무기와 더불어 해군력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
핵미사일 개발에 몰두했던 북한은 지난해부터 해군력 강화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북한은 지난해 8월 김 위원장의 동해함대 근위 제2 수상함전대 시찰을 공개하면서 1500t급으로 추정되는 신형 경비함을 공개했다. 이때 등장한 경비함은 화살-2형 순항미사일을 쏘는 모습을 연출했다. 100㎜ 함포와 30㎜ 근접방어기관포 등도 갖췄다.
지난 2월에는 김 위원장의 남포조선소 시찰 소식을 전하면서 이란산 76㎜ 함포를 장착한 경비함을 공개했다.
또 러시아산 Kh-35 대함미사일을 토대로 만든 바다수리-6형을 시험발사했고, 신형 지대공미사일도 시험했다.
바다수리-6형은 북한이 기존에 운용하던 중국산 실크웜 지대함미사일은 물론 과거에 공개됐던 금성-3형 미사일보다도 성능 면에서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다수리-6형과 더불어 신형 지대공미사일이 함께 전력화되면 서북도서 일대에서 한국 해군의 움직임을 견제하고 NLL을 무력화할 힘을 얻게 된다.
북한은 새롭게 선보인 유도무기들을 전진 배치, NLL 해역에 대한 접근 거부 전략을 노골화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바다수리-6형 시험발사 직후 동·서해함대 해안미사일병대대 전투편제 개편을 지시하면서 지대함 미사일을 전진배치할 것을 주문했다.
서해에서 NLL은 북한군의 움직임을 견제하면서 수도권 측면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서북도서방위사령부가 지난 15일 서북도서에 신속기동부대 증원훈련을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북한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끊임없이 도발을 했고, 군사회담에서 NLL을 두고 우리 측을 압박했다. 언제든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 서해 NLL이다. 그 폭발이 크게 확대되지 않도록 군사대비태세를 갖추면서 상황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게 군 안팎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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