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소영 측 항소심서 증거 제출
선경건설 명의 어음·사진 등 근거
2심선 노태우 비자금 유입 인정
노 관장에 1.3조 재산분할 판결
최 측, 증거 능력 문제 제기 전망
대법원서 판결 확정 여부 관심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2심 재판부가 1조3808억원 규모의 재산분할이란 파격적인 판결을 내놓으면서 대법원이 이번 판결을 그대로 확정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통상 대법원에서 이혼 소송의 결과가 뒤집히는 사례는 드물지만 이번 판결이 이례적이란 평가를 받는만큼 대법원이 다른 판단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가사2부(재판장 김시철)는 이번 사건에서 SK그룹의 기업가치 증가와 경영 활동 기여도에 대한 노 관장의 기여분을 파격적으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재산분할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했는데, 이는 1심의 위자료 1억원·재산분할 665억원보다 각각 20배가량 늘어난 규모다.

대법원에서는 앞선 1,2심과 마찬가지로 최 회장이 보유한 SK그룹 주식을 ‘특유재산’으로 볼 것인지, 공동재산으로 봐서 분할 대상에 포함시킬지, 노 관장의 ‘기여도’를 얼마나 인정할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원칙적으로 특유재산은 개인 소유로 보기 때문에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된다. 1심 법원은 최 회장 보유 SK 주식은 부친인 최종현 전 회장에게서 증여·상속받은 SK 계열사 지분이 기원인 특유재산이라 재산 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자 노 관장 측은 항소심 재판에서 재산분할 대상을 주식이 아닌 ‘현금 2조원’으로 변경했다. 그러면서 1990년대에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가운데 약 343억원이 최 전 회장과 최 회장에게 전달됐으며, 1992년 증권사 인수, 1994년 SK 주식 매입 등에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노 관장 모친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 온 선경건설 명의의 50억원 어음 6장의 사진과 메모가 결정적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이 약속어음을 받은 것은 차용증과 유사한 측면이 있고 최종현에 300억원의 금전적 지원을 하고 받았다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고 인정했다. 아울러 SK그룹의 태평양증권 인수와 이동통신 사업 진출, 글로벌 네트워크 형성에도 노 전 대통령의 ‘무형적 기여’가 상당했다고 봤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해당 자금의 유입 경로가 불명확할뿐 아니라 부친인 노 전 대통령에게서 나온 자금을 노 관장의 기여도 산정에 반영하는 데 대한 이견도 제기되고 있다. 최 회장 측은 “비자금 유입 및 각종 유·무형의 혜택은 전혀 입증된 바 없으며 오로지 모호한 추측만을 근거로 이뤄진 판단이라 전혀 납득할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최 회장 측은 향후 상고심에서 2심 재판부가 구체적인 물증 없이 메모와 약속어음 사진만을 핵심 증거로 판단했다며 증거 능력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가사소송 특성상 파기환송 가능성이 낮다는 예측과 대법원이 법리를 다시 판단할 것이라는 전망이 공존한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증거나 법리 문제를 떠나 ‘외도해 놓고 부인을 핍박했다’는 국민 감정을 제대로 자극한 사건 같다”면서 “재산분할 등 가사사건의 경우는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는 경우가 드물어 이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반면 판사 출신의 다른 가사사건 전문 변호사는 “재판부가 주식을 공동재산으로 포함시킬 수는 있다고 예측했지만, 노 관장의 기여도를 35%까지 인정한 것은 대리인들조차 예상치 못했을 것”이라며 “원칙적으로 이런 판단은 사실 인정의 문제여서 법리오해에 대해서만 판단하는 대법원이 건드리지 않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사회적 파급력 등을 고려할 때 법리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대법원이 (사건을) 돌려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대법원에서 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최 회장은 막대한 재산 분할은 물론 노 관장에게 돈을 다 줄 때까지 하루에 1억9000만원이 넘는 이자 부담까지 안게 된다. 2심 재판부는 재산분할금에 대해 판결 확정일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5%의 지연이자를 붙였다. 2심대로라면 연 690억4085만원, 하루에 1억8900만여원의 지연손해금을 떠안는 셈이다.
한편 노 관장은 이날 변호인을 통해 “항소심 판결만이 선고돼 아무것도 확정된 것이 없는 현재로서는 향후 상황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밝히는 게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1일 노 관장 측 한 대리인이 ‘SK그룹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던 것을 정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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