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소름 돋는 ‘악의 평범성’

관련이슈 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4-06-13 23:11:32 수정 : 2024-06-13 23:11:3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은 한나 아렌트에게 대중적 명성을 가져다 준 그녀의 대표적인 개념이다.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직관한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자신의 상상과 달리 지극히 평범하고 가정적이며 준법 정신이 투철한, 육체적, 정신적으로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점에 놀랐고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6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대학살하는 인종 청소를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는지 연구한다. 그녀가 찾은 해답은 ‘악’은 특정한 사이코패스나 악마의 전유물이 아니라 사유 능력의 부재에서 생겨난다는 것이었다. 악은 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과 행위에 대해 사유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행동할 때 우리는 악의 평범성에 노출된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언더 더 스킨’ 이후 10년 만에 완성한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신작이다. 아이히만과 같은 죄목으로 사형당한 나치 전범 루돌프 회스를 주인공으로 한 마틴 아미스(Martin Amis)의 동명 소설을 헐겁게 차용했다. 이 영화의 탁월한 점은 홀로코스트를 재현한 영화의 독창적인 전략에 있다. 극악스럽게 죽음의 포르노그라피를 보여주는 ‘카포’ 같은 영화와 달리 이 영화는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보여주는 역설적 전략을 택한다. 루돌프 - 헤트비히 회스 부부는 아우슈비츠 안에 가족의 왕국을 건설한다. 아름다운 집, 예쁜 정원, 그 속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아이들은 오랜 동안 부부가 꿈꿔 온 낙원의 모습이다. 이 낙원이 지옥 안에 세워졌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꽃과 곤충, 꿀벌, 채소로 가득한 정원 담벼락 뒤로 수용소의 지붕과 소각장의 굴뚝이 보이고 소각로에서는 불기둥이 치솟지만 수용소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럭저럭 시야에서 감춰진다. 총소리. 비명소리, 소각로 돌아가는 소리가 백색 소음처럼 들리지만 이들은 이런 소리에도 개의치 않는 듯하다.

정작 끔찍한 것은 관객이다.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뒷마당에서 살해당하는데 아이들은 희생자들의 이빨을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고 여자들은 정원을 감상하며 부부는 침실에서 낄낄거린다. 참으로 지독한 인지부조화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영화는 이 부조리, 악의 평범성을 섬뜩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건물 곳곳에 다수의 카메라를 설치해 관찰 예능을 찍듯이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담아낸다. 낙원을 에워싼 지옥의 풍경과 하울링에 무감각한 인간들의 모습은 공포를 배가한다. 영화는 안간힘을 다해 이 공포극에 온기를 불어넣고 애도하고자 한다. 엔딩부 암흑의 무지화면 위로 울려퍼지는 사운드는 봉인된 지옥문이 열리고 희생자들의 아우성이 터져나오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온몸에 소름이 돋지만 영화는 우리에게 이 소리를, 이 고통을 견딜 것을 요구한다. 이 영화, 반드시 극장에서 보시기를 권한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츄 '깜찍한 브이'
  • 츄 '깜찍한 브이'
  • 장원영 '오늘도 예쁨'
  • 한소희 '최강 미모'
  • 수현 '여전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