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음식·물건도 비싸게 값 매겨
“법률 문제 없어… 불가피한 선택”
차별 논란 우려에도 더 늘어날 듯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지난 4월 개업한 한 가게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일본 거주자보다 비싼 가격으로 음식을 판다. 월∼목요일 저녁 시간대에 내놓은 해산물·음료 뷔페 코스는 일본인, 재일 외국인에게는 5980엔(약 5만2000원)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1000엔 비싼 6980엔(6만원)이다. 음식점 관계자는 “관광객에 대한 접객 비용을 생각하면 가격을 높게 매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13일 보도에서 일본에서 증가하고 있다고 소개한 ‘이중가격’ 사례다. 같은 물건을 외국인에게는 비싸게 팔아 차별 논란이 불가피한 행태지만 닛케이는 법률상 문제가 없고 “소비자가 받아들이기 나름”이라고 보도했다. 장기화되고 있는 역대급 엔저 현상에 따른 일본 거주자와 외국인 관광객의 구매력 차이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닛케이,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엔저 현상이 지속되면서 일본은 외국인들에게 ‘싸게 물건을 살 수 있는 나라’가 됐다. 고급 브랜드 판매점이 많은 도쿄 긴자에 외국인들이 몰리면서 일부 매장에서는 입장을 기다리는 수십 명의 긴 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한 명품점 관계자는 아사히에 “유럽에서 온 손님이 자국 브랜드를 사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폰을 두고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출시된 아이폰15 모델의 경우 발매 시점 당시의 환율로 계산하면 38개 국가, 지역 중 일본은 중국 다음으로 저렴하다. 가격 평균은 다른 국가, 지역이 15만3518엔(약 134만원)으로 일본이 3만엔(26만원) 정도 싸다. 일본 애플 직영점에 외국인 관광객이 많을 수밖에 없다.
역대급 엔저에 따른 현상이다. 아사히에 따르면 2021년 초 1달러에 103엔대였던 환율은 현재 150엔대 중반으로 형성되어 있다. 엔저는 외국에서 들여오는 원재료, 에너지 등의 가격 상승을 초래해 기업들은 판매가를 올리지만 급속한 엔저를 따라잡을 정도는 아니어서 외국인 관광객들은 일본에서 사는 게 싸다고 느낄 수 있다.
엔저는 외국인에게 일본을 ‘싼 나라’로 인식하게 하고 있지만 일본 거주자에게는 물가 부담으로 작용한다. 구매력 차이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일본에서 영업을 하는 한 일본 거주자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가게들이 내놓은 대책이 이중가격이다. 닛케이는 “가격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가능하다면 이중가격 표시는 법률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전문가의 말을 전하며 “상품, 서비스 수요에 따라 가격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체계를 도입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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