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간 한센인들을 위해 희생한
오스트리아 출신 두 간호사 삶 다뤄
매진 행렬에 공연 횟수 3차례 늘려
‘불멸의/ 희망은 보여져야 한다/ 희망은 느껴져야 한다/ 희망은 실현 가능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희망으로 살아야 한다.’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 중인 음악극 ‘섬: 1933~2019’의 막이 내리고 나오는 내레이션이다. 1962년부터 2005년까지 40여년간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한센인(한센병 환자)을 위해 헌신한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90)가 남긴 말이다. 가톨릭 재속회원인 마리안느는 4년 늦게 입도한 동료 간호사 마가렛 피사렉(1935∼2023)과 각각 ‘큰 할매’와 ‘작은 할매’로 불리며 한센인을 성심껏 돌본 뒤 몸이 쇠약해지자 함께 돌아갔다. ‘섬: 1933~2019’는 ‘소록도 천사’였던 두 간호사의 감동적인 실화와 함께 시대가 바뀌었어도 크게 달라진 것 없는 약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혐오, 차별의 잔인함을 다룬다. 1930년대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시절 소록도 갱생원에 격리된 한센인의 억압 받던 삶과 1960년대 열악했던 소록도 생활, 2010년대 서울의 발달장애 아동 가족이 겪는 고달픈 나날을 교차해 보여주면서다. 이는 한센인 백수선과 소록도에서 나고 자란 그의 딸 고영자, 고영자 막내딸 고지선까지 3대의 삶에 걸쳐 응축된다. 가슴 아픈 역사와 기가 막힌 현실은 같은 시대를 산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노래를 통해 묵직하게 와 닿는다. 작은 사슴을 닮았다 해서 소록도라 불린 섬은 아름다운 이름과 달리 오랫동안 기피 지역이었다.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과 차별의 상징과도 같았다. 지금의 소록도는 이름 대로의 본모습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엔 약자를 꺼리고 고립시키는 섬이 널려 있다. ‘섬: 1933~2019’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그랬던 것처럼 서로 배려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만이 희망임을 전하는 수작이다.
입소문을 타고 매진 행렬이 이어져 공연 횟수를 3차례 더 늘렸다. 마리안느·고지선 역을 배우 백은혜와 정연, 마가렛과 백수선 역을 정운선과 정인지가 번갈아 연기하는 등 무대 위 배우 12명이 1인 다역을 맡는데 호흡이 척척 맞으며 맛깔 나는 연기를 보는 즐거움도 크다. 7월7일까지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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