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나경원 의원의 ‘채 상병 특검법’ 처리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무산된 배경에는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의 찬성 토론을 막기 위한 당 지침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5일 통화에서 “이 의원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기 위해 이 의원 이전에 토론에 나서는 의원들이 최대한 발언을 길게 하라는 원내 지도부 지침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이 필리버스터 찬성 토론에 나설 경우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관측된다.
국회법에 따라 필리버스터 24시간 이후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토론을 끝낼 수 있는데, 야권에서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료한 뒤 표결에 나설 것을 고려한 ‘시간 끌기’ 전략으로 해석된다.
필리버스터 8번째 순서였던 이 의원 이전 국민의힘 토론자는 4명이다. 당초 유상범(1번)·나경원(3번)·주진우(5번)·송석준(7번) 의원이 이 의원 앞 순서였지만, 이후 유상범(1번)·주진우(3번)·박준태(5번)·곽규택(7번) 순으로 변경됐다. 나 의원과 송 의원은 각각 8번, 13번으로 배치되며 사실상 필리버스터를 할 수 없게 됐다.
당초 국민의힘은 지난 2일 본회의에서 채 상병 특검법이 상정될 경우에도 나 의원을 당내 두 번째 주자로 내세울 예정이었다. 원내행정국에 따르면 당시 나 의원의 필리버스터 예상시간은 1시간으로 잡혀 있었다.
실제 이 의원 이전 토론에 나섰던 유상범(4시간18분)·주진우(5시간13분)·박준태(6시간49분)·곽규택(4시간40분) 의원은 장시간 발언을 이어갔다. 곽 의원은 필리버스터 개시 24시간이 지나서도 발언을 계속했고, 총 필리버스터 시간이 26시간을 넘기면서 이 의원을 본회의장 단상에 세우지 않겠단 국민의힘 전략은 성공한 셈이다.
당대표 선거운동 중인 나 의원은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지난 3일 예정된 대구 치맥 페스티벌 등 일정을 취소하고 상경했다. ‘원내 당대표’의 강점을 부각하고 있는 나 의원은 당시 통화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무도한 의회 독재 등을 국민께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당연히 복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 의원은 토론에 나서기 위해 주 의원 순서 이전부터 국회에 대기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국민의힘 동료 의원들의 필리버스터 투쟁에 박수를 보낸다”며 “저도 그 대열에 동참하려 했지만 원내 지도부와의 상의 끝에 다른 동료 의원께 기회를 양보했다”고 적었다.
일각에서는 선거운동 중인 나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하면 판세에 도움될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나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단순히 필리버스터를 임팩트 있게 하는 것보다 길게 하기로 당 전략이 바뀌면서 양보하게 됐다”면서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해서 욕심을 차리기보단 당을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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