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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역 참사를 둘러싼 논란들 [서아람의 변호사 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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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7-09 06:00:00 수정 : 2024-07-08 16: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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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미터 역주행으로 9명 희생
운전자 급발진 여부 놓고 시끌
과실 입증 안 돼 종종 무죄 판결
무죄 후 민사 땐 운전자가 입증

2024년 7월의 첫 번째 날, 대한민국은 역주행 교통사고 대규모 참사 소식에 망연해졌습니다. 인파의 통행이 활발한 저녁 9시반경, 호텔 지하주차장에서 나온 빠져나온 제네시스 승용차가 갑자기 일방통행 도로를 역주행하며 속도를 올리더니, 급기야 방호 울타리를 뚫고 인도를 넘어 보행자들을 들이받고 계속해서 두 대의 승용차를 들이받은 후에야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고 멈추어선 사건이었습니다. 자동차가 멈추지 않고 달린 거리는 200미터가량이었습니다.

 

7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역 교차로 인근에서 발생한 차량 인도 돌진사고 현장에 추모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

십 년 넘게 시청역 바로 옆 회사로 출퇴근했던 남편은, 뉴스 영상을 보고 할 말을 잃은 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습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호 울타리가 송두리째 뽑혀나가 쓰러질 정도로 강했던 충격은 아홉 명의 하나뿐인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피해자 중 한 명은 중학교 시절 뺑소니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되었는데도 이를 극복하고 서울시 세무공무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이끌던 팀의 팀원과 함께 이달의 우수팀으로 선정된 걸 축하하며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가는 길 참변을 당했습니다. 네 명이 함께 있다가 사고에 휘말린 은행원들은 막내의 승진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던 길이었습니다. 그들 모두 가족과 친구와 동료들에게 사랑하고 사랑받던 소중하디 소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건 인간의 본능입니다. 무지는 공포를 키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그 누구도 사고 원인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사건에서만큼은 운전자 본인도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지도요. 운전자인 차모씨는 68세로, 1974년 처음 면허를 취득해 지금까지 트레일러 기사와 버스 기사로 운전 일만 해왔다고 합니다. 사고 당시에는 무사고로 알려졌지만, 보험 이력을 확인한 결과 2018년부터 2021년까지 6회 정도의 대물 교통사고 이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전체 운전 경력이나 운전 시간을 볼 때 특별히 많은 횟수는 아니긴 합니다.

 

차씨는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역주행 길인 줄은 몰랐다.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작동하지 않았고 딱딱했다. 브레이크를 밟을수록 차가 빨라졌다.”고 진술하면서 차량 결함, 그중에서도 ‘급발진’을 주장했습니다. 사고 당시 차량 조수석에 타고 있던 차씨의 아내 또한 급발진이라고 하면서 “천천히 가라, 왜 이렇게 빨리 가느냐”고 외쳤다고 진술했고요. 사고 발생 15분 이후 차씨가 버스 회사 동료에게 전화해 “형, 이거 급발진이야.”라고 말한 사실도 있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가해자가 호텔에서 나올 때부터 부부 싸움한 증거가 나왔다고 한다, 다 죽자고 일부러 풀 액셀을 밟은 게 블랙박스로 입증되었다고 한다’ 등의 악소문이 퍼졌지만 근거 없는 루머로 밝혀졌고요. 건강에 별 이상이 없고, 운전을 직업으로 하고 있으며, 음주나 마약도 하지 않았다고 하고, 사고 직전 아내와 함께 처남의 칠순잔치에 다녀오는 길이었던 차씨가 짧은 순간 이성을 잃고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향해 차를 몰고 달려들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반박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첫째, 차량이 한 번 급발진 현상을 일으키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어딘가를 들이받아 강제로 멈추는 것이 보통인데 이 사건에서는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고 멈추었다는 점. 둘째, 블랙박스 오디오 확인 결과 차씨 아내의 진술처럼 당황해서 소리치는 음성은 녹음되어 있지 않았던 점. 셋째,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량 후방의 브레이크등이 켜져야 하는데 역주행 당시에는 켜지지 않았다가 나중에야 켜진 것으로 보이는 점. 넷째, 차씨는 ‘브레이크를 밟을수록 빨라졌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보통 급발진 사건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아도 먹통이 될 뿐 가속을 시키지는 않는 점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급발진이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국과수에서 20년간 교통사고 분석을 담당했던 박성지 과학수사과 교수는 “급발진 주장 사고 10건 중 9건 정도는 운전자가 브레이크인 줄 알고 가속페달을 밟고 있었던 경우였다.”고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급발진이 인정될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 민형사적으로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형사사건의 경우 ‘급발진을 포함한 차량 결함이 아니라 운전자의 과실로 인하여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수사기관, 즉 경찰이나 검찰이 입증하여야 합니다. 그 입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혹시 급발진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합리적인 수준으로 남아 있다면 운전자는 무혐의나 무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형사 재판에서는 ‘급발진이 인정되어서’가 아니라 ‘운전자 과실임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아’ 무죄가 나온 사례가 종종 있습니다.

 

서아람 변호사

그러나 운전자가 무혐의나 무죄를 받았다고 해서, 자동차 회사에 곧장 민사 손해배상 청구를 하여 막대한 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민사에서는 입증책임이 전환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처럼 기술적으로 복잡한 물건의 경우 대법원 판례에 의해서 원고, 즉 운전자의 입증범위가 다소 줄어들긴 하지만, 여전히 사고에 자신의 과실이 없었다는 점과, 차량의 결함이 제조 당시에 생겼지 자신의 관리 소홀이나 잘못으로 생긴 게 아니라는 점을 먼저 입증해야만 합니다.

 

현재 서울남대문경찰서는 운전자 차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사, 치상)죄 혐의로 입건하고, 체포영장을 신청했다가 기각당한 상태입니다. 단, 이건 피의자에 대하여 신병을 구속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일 뿐 혐의 유무에 대한 판단은 아닙니다. 사실 경찰의 수사는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운전자에 대한 신체 감정 결과, 블랙박스 등 사고 영상 디지털 분석, 필요한 경우 운전자와 동승자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수사나 휴대폰 포렌식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명확한 진실이 밝혀지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 사고가 급발진으로 인한 것이든 아니든, 급발진 시 대처요령을 필히 익혀두어야겠습니다. 일단 페달에서 발을 다 떼어보고, 두 발로 브레이크를 한 번에 세게 밟아보고, 그래도 소용없으면 가드레일 옆에 붙어 수차례 들이받으면서 마찰로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어딘가에 박아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어느 정도 충격흡수장치가 되어 있는 다른 차량의 뒤 범퍼가 제일 낫다고 합니다. 기억, 또 기억해야겠습니다.

 

서아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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