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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례
오년 생존율 오십오 프로란 무슨 뜻인가요?
별거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간호간병 시스템 4인실의 조무사들은
내 모든 오줌의 무게를 잰다
오줌 누면 달려가서 재고 기록하고
어린애처럼 나는 오줌 마렵다고 고해야 한다

옆 침대 아주머니는 수박 오천통을 밭떼기로
실어 보내고 왔단다
아이구 나 좀 살려줘요
검사 받다 죽을 거 같애
밤새도록 앓다가
아침에 남편에게 전화해서
참깨순 나왔어? 묻는다

(중략)

4인실에서의 목소리가 무균실로 떠오르는 듯하다
거봐, 내가 물을 좀 주라고 했잖아
수박 오천통 떼어 보내고
갈아엎은 밭에서 쟁쟁하게 솟아나는
참깨순, 참깨순, 참깨순

이 시의 마지막 행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삶의 이런저런 난관에 부딪히며 몸도 마음도 얼어붙을 때마다 “참깨순, 참깨순, 참깨순” 중얼거리는 나를 본다. 참깨순이라니. 참깨순이 자라는 밭 같은 건 구경해 본 적도 없지만, 반복해서 “참깨순”을 외다 보면 잠시나마 어떤 파릇한 힘이 솟는다. 꼭 무슨 구호 같기도 하다. 힘을 내자고, 한 번 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자고, 스스로를 북돋는 구호.

 

얼마 되지 않는 생존율을 가늠하며 병실에 누워 밤새 앓다가도 아침이 되면 “참깨순 나왔어?” 묻는다는 것. 이 마음의 근저에는 무엇이 움트고 있을까. 이처럼 끈질기게 삶을 추동하는 에너지를 대체 무엇이라 명명해야 할까. 감히 알은체할 수 없지만, 나는 좋아한다. 깊이 경애한다. 병실에 “쟁쟁하게 솟아나는” 참깨순. 무균실에 둥실 떠오르는 산 사람의 목소리.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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