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hommage)는 프랑스어로 ‘존경’이란 뜻이다. 국내에선 문인이나 화가, 작곡가, 영화감독 등 예술인들이 다른 글 혹은 작품의 핵심 요소나 표현 방식을 인용하는 것을 주로 의미한다. 원작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목적이란 점에서 원작을 무단으로 도용하는 ‘표절’이나 원작을 희화화하는 ‘패러디’와는 다르다. 다만 뭐가 표절, 패러디가 아니고 오마주인지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장 확실한 것은 당사자가 ‘이것은 ○○○에 대한 오마주’라고 밝히는 경우다. 하지만 비유법 중에서도 직유보다 은유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것처럼 “이건 오마주입니다”라고 공개하고 싶은 이는 많지 않을 듯하다. 일단 던져 놓고 ‘앗, 이것은 오마주 같은데’ 하는 반응이 나오길 기다리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나 싶다.
흔히 오마주는 시와 소설, 그림과 영화 등 예술 영역에서 통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치라고 예외는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사례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뒤 젤렌스키는 세계 각국 의회에 화상으로 출연해 의원들을 향해 “우크라이나를 도와달라”고 촉구했다. 그 가운데 압권은 영국 하원에서 행한 연설이었다. “우리는 바다에서, 하늘에서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계속해서 우리 땅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영국 의원들은 감동해 기립박수를 보냈다. 제2차 세계대전 초반인 1940년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패망하며 영국 안보가 풍전등화에 놓였을 때 윈스턴 처칠 당시 총리가 의회에서 행한 연설을 그대로 인용했기 때문이다. 영국 언론은 이를 ‘처칠을 향한 오마주’라고 규정했다.
1973년 9월7일의 새벽의 일이다. 그날 아침 독자들에게 배달할 시내판 신문을 만들고 있던 조선일보 편집국에 선우휘(1922∼1986) 주필이 등장했다. 사설을 갈아 끼우라고 지시하기 위해서였는데, 새롭게 실린 사설의 서두가 의미심장하다. “요즘 우리의 심정은 알고 싶은 것이 있는데 알 수가 없고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가 없는 상태에서 몹시 우울하고 답답하다. 무엇이 그토록 알고 싶고, 무엇을 그토록 말하고 싶은가 하고 물으면 그것은 한 마디로 김대중 사건이라고 하겠는데, 지금은 사건을 수사 중이니 (…) 더욱 답답하다.” 약 1개월 전인 1973년 8월8일 일본 도쿄에서 벌어진 김대중(DJ) 납치 사건과 관련해 당시 박정희정부에 그 진상을 밝힐 것을 촉구하는 사설이었다.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모든 일간지 초판을 입수해 낱낱이 살펴본 뒤 정권에 불리한 기사, 칼럼, 사설 등의 삭제를 강요하던 시절의 일이다. 선우휘는 이를 피하고자 새벽에 사설을 교체하는 묘책을 동원한 셈이다. 지금은 그냥 ‘묘책’이라고 말할 수 있어도 당시로서는 중정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심지어 구속될 수 있는 위험까지 감내한 용감한 행동이었다.
“요즘 국민은 알고 싶은 게 있는데 알 수가 없고, 듣고 싶은 게 있는데 들을 수가 없으니 몹시도 답답하고 우울하다. 전자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사건’ 진상이요, 후자는 이에 대한 여사의 진솔한 사과다. 그런데 (…) 용산은 가타부타 말을 않고 빠져 나가려는 기색만 보이니 더욱 답답하다.” 18일 어느 조간신문에 실린 칼럼이 눈길을 끈다. 위에 소개한 1973년 9월7일자 조선일보 사설과 너무나 흡사해서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사건을 대하는 필자의 답답함이 녹아 있다. 이게 51년 전 조선일보 사설에 대한 오마주인지 여부는 칼럼을 쓴 당사자만 알 수 있을 것이다. 현 정부를 질책하기 위해 박정희정부 시절 일화까지 소환해야 하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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