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심호섭의전쟁이야기] 강력한 프로이센군의 빛과 그림자

관련이슈 심호섭의 전쟁이야기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4-07-21 22:52:46 수정 : 2024-07-21 22:52:4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과거 독일군은 그 우수한 전투 능력으로 많은 이의 연구 대상이 되어 왔다. 이러한 독일군의 근원은 프로이센군이다. 프로이센은 오랜 시간 동안 독일 지역 내 변방의 소국이었지만, 18세기에 유럽의 강대국 반열에 올랐으며, 19세기 중반에는 전쟁을 통해 독일 통일을 이루어 독일 역사의 가장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그 중심에는 프로이센이 지녔던 강력한 군사력, 즉 프로이센 군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프로이센의 강력한 군사력은 군제개혁의 성공으로부터 나왔다. 프로이센은 18세기 들어 군사 중심의 중앙집권국가로 발돋움하며, 소국임에도 유럽에서 네 번째로 큰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후 프리드리히 대왕의 전략·전술적 기민함에 힘입어 프로이센군은 유럽 최강의 군대로서의 명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전략적 불리함을 선제적 속전속결로 극복하였으며, 빠른 기동을 통해 상대방의 측면을 공격하며 주요 전투의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19세기 초반,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있던 프로이센군은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게 큰 패배를 당하고 항복하게 된다. 패배의 충격으로 프로이센은 군제개혁을 단행하여 군을 변화시켰고, 그 결과 나폴레옹 전쟁의 승전국이 되어 훗날 독일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계몽군주이자 군사적 천재로 평가받았던 프리드리히 대왕(1712∼1786)의 초상화

프로이센의 군제개혁은 단순한 군제개혁에 더해 싸우는 방식의 변화와 함께 기존의 신분제 사회 타파라는 사회 개혁이 함께 이루어지며 성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프로이센은 국민개병제를 도입하여 대규모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고, 평민에게도 장교 문호를 개방하여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전문화된 장교단을 확보했다. 이렇게 형성된 프로이센군의 우수성은 통일된 독일의 군대에도 계승됐다.

전략적·지정학적 문제를 군사력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던 독일군의 노력은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지만 뚜렷한 한계가 있다. 7년 전쟁 때 전투에서 승리했던 프로이센이 전쟁에서 온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고, 독일 역시 뛰어난 전투 효율성과는 별개로 1,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다. 군사력만 가지고는 전쟁이라는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전략 수립에는 군사적 수단뿐만 아니라 국력을 구성하는 모든 수단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프로이센과 독일군이 그들이 배출한 위대한 군사사상가인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의 수많은 격언을 받아들였음에도, 국가가 군의 우위에 있으며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라는 상위 명제를 무시하여 결국 패망했다는 점은 아이러니이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오마이걸 아린 '청순&섹시'
  • 오마이걸 아린 '청순&섹시'
  • 임지연 '여신의 손하트'
  • 이주빈 '우아하게'
  • 수현 ‘눈부신 미모’